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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18. 2019

너의 여행은 인샬라

언젠가 터키에 갔을때였다. 내 나이 20대...


터키의 압구정라 불리는 지역의 대형 쇼핑몰을 구경하다 아픈 다리도 쉴겸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한무리의 남자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히히덕 거리다 음료를 주문하러갔더니 아르바이트하는 젊은 청년이 주문을 받는다.  


 


주문을 하기 위해 바라본 그 청년의 눈동자가 너무 맑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도 나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홍차 한잔을 주문했다. 평상시 마시지도 않는 홍차였다. 


잠시 후 떨리는 마음으로 홍차가 담긴 쟁반을 받아들고 조심스래 테이블로 돌아왔다. 옆 테이블의 정신사나운 아이들이 계속 말을 건다.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계속 아르바이트 청년을 흘끔 흘끔 바라보았다. 


 

아시아와 유럽의 좋은점만 버무려 놓은듯한 외모. 갓 딴 짙은 초록 올리브색의 눈동자. 은빛이 도는 회갈색 머리칼, 작고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콧날, 꾸미지 않은 듯 헐렁한 흰 티셔츠에 물빠진 청바지를 입은 그는 보그 잡지에서 막 튀어 나온듯한 모습이었지만 매우 진중하고 겸손해보였다. 



내가 그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홍차컵 이 다 비워질 무렵 그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내심 반가운 마음에 주문하는곳으로 가보니 새로운 홍차 한 잔을 준다. 난 주문한적이 없다하자 내게만 특별히 주는 자기 선물이란다.  


 


"아... 고마워..."  


 


"너와 함께 있는 저 아이들. Street boy 들이야 같이 놀지마" 라고 그가 걱정스러워한다.  


 


"옆 테이블에 있던 아이들이야. 걱정마"  


 

왜 걱정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짧은 이야기가 오가다 그 청년이 머뭇머뭇하며 하는 말


 


"음... 저... 난 내일 쉬는 날인데, 이 근처 가이드 해줄까?"



 아... 아쉽다. 


잠시 갈등했지만


" 미안해서 어쩌지? 난 내일 이스라엘로 가야해. 비행기티켓을 이미 끊어놨어.. 미안...ㅠㅠ"


짧은 인연임을 직감하며 안타까워하던 나는 


"너 한국이란나라 알지? 다음엔 니가 한국에 오는건 어때?" 그럼 내가 가이드해즐께...•


내심 거짓이더라도 그리하마 약속해주길 바라며 물었고,  아무 답이 없는 그를 채근하며 다시


"언제쯤 올 수 있을것 같아?" 라고 물으니


그가 하는 말



"인샬라..."


 


'인샬라?? 인...샬...라..??


알라신의 뜻으로? 신밧드의 모험이란 만화에서 늘 듣던 그 인샬라? 너 신밧드야?


 

난 그순간 당황스러웠다. 왜 나의 여행이 나의 의지가 아닌 신의 뜻이어야하는가?


20대의 나는 삶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이 젊음이 가져야할 권리이자 책임이라 여겼나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결혼을 하고, 일을 하고,아이를 키우고, 책임과 의무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일은 나의 소관이 아닌일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에겐 알라신이, 누군가에겐 하느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부처님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난 서점의 여행에세이가 꽂힌 서가를 서성되며 글로 지구를 돌아다닌다. 그것이 지금 내게 허락된 일상의 작은 사치다. 


아예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누군가의 여행기를 손에 들고 눈을 감는다. 

사막의 큰귀 여우와 북극권의 오로라, 이누이트의 개썰매와 헤밍웨이의 단골 찻집, 오베르의 밀밭과 브뤼셀의 작은 광장이 차례로 지나간다. 


그 순간 어디선가 얼그레이 향이 실려오고 나즈막히


인..샬. 라.




그도 이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이 되엇겠구나.

사진속의 그와 나는 여잔히 20대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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