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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22. 2019

너랑 나랑 신세가 똑같구나...

아버지의 그 말이 마음 아파서...

부부와 고등학생 아들, 딸 이렇게 네 식구인 동생네는 아이들의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유기견을 입양했다. 이전에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동생네 식구가 지어준 이름은 '아리'. 새로운 식구가 생기자 집안에 활력이 생겨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생긴 문제는 가족들이 회사와 학교로 출근과 등교를 한 후 너무 긴 시간 동안 아리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저녁 산책을 시키고, 놀아주었지만 시간상 역부족이었을까, 가죽소파는 군데군데 뜯겨나가기 시작했고, 실수로 방문을 열어놓고 나간 날이면 침대 위에 올라가 오줌을 싸 놓는 바람에 동생은 끊임없이 이불 빨래를 해야 했다. 아리 나름대로의 시위였을 것이다.


아리를 포함한 온 식구가 친정집으로 모인 날, 집 앞 고깃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해서 아리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낯선 할머니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린 현관문이 닫힘과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순하고 소리가 없던 녀석이 목이 터져라 울어재꼈다. 가족들은 그 소리에 놀라 얼른 들어가 아리를 안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문제는 고깃집에서 강아지 출입을 거부한 것이었다. 이해 못할 일이 아니었기에 동생네 식구들은 돌아가며 문 밖에서 아리를 안고 있기로 했다. 식당의 한편 통유리 쪽 테이블이 우리의 예약석이었다. 맨 먼저 동생이 아리를 데리고 유리 창밖 계단에 앉았다. 우리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 고기를 구웠다. 제부와 조카들은 연신 고기쌈을 싸가지고 밖으로 날랐다. 잠시 후 급히 밥 먹기를 마친 제부가 동생과 바통 터치를 했다. 


식당 밖에서 아리와 함께 앉아 있는 아리 엄마 / 동생과 바톤 터치한 제부


동생은 아리에게 또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깔끔하게 씻기고, 예방접종을 하고, 틈틈이 산책을 시켰지만 맞벌이 부부와 고등학생 남매가 바삐 살아가는 집에서 아린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동생네는 가족회의 끝에 결국 친정집으로 아리의 거처를 옮기게 했다. 다행히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린 하루 이틀 만에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특히 아버지가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아리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켜주는데,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서만 변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쩜 밖에서만 변을 보겠다는 아리의 전략이 유효했을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 두 번, 아리와 산책을 나가는 일은 아버지의 일상이 되었다. 아버지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가 출타하셨을 때 가족 중 누군가는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는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도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는 아리를 데리고 나가셨다가 돌아오셨다. 유기견이었기에 정확한 아리의 나이는 모르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10살은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잠자는 시간도 길어지고 예전에 비해 행동도 느려졌다. 


아리와 함께 산책을 마친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며 말씀하신다.


"아이고, 아리가 점점 눈이 침침해지고 귀도 어두워지는 것 같아. 

너나 나나 신세가 똑같구나..."


무뚝뚝한 아버지는 저녁 산책길에서 아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사람이 강아지를 보살핀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아버지는 아리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계신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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