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나의 어릴 적 인생을 낭떠러지 밑으로 끌어내렸던 완벽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가끔 사념에 빠지곤 하는데 내가 완벽주의에 빠진 원인이 뭘까 요즘 새롭게 떠오른 생각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우정도 사랑도 물건도 사상도 모두 변한다. 그중에서 그나마 천천히 변하는 것이 있는데 가족과 나 자신, 그리고 집과 돈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철이 들어갈수록 변하지 않는 가족들에 집중하고 돈에 악착같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완벽주의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은 어떻게 연결될까? 어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나에게 완전히 흡수되어 잊히지 않거나 완전히 이해된 상태를 원하게 되는데, 완벽하게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 그 완전한 상태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하루의 공부 시작을 위해 책을 펼친 후 처음 한 장을 내 안에서 느낌이 오도록 입력해놓지 않으면 그날의 공부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 정도의 완벽주의였으며 안 좋은 말로 강박증이었다. 처음 한 장의 입력을 위해 처음 한 글자의 입력에 신경 썼고 내용의 이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자들의 입력이 될 때 내 마음의 느낌이 오느냐에 따라 공부가 진행되었으며 만약 한 장의 공부를 진행하고 나서 다시 그 페이지를 눈을 감고 돌이 켜봤을 때 눈앞에 사진이 찍힌 것처럼 생생하지 않았다면 다시 처음부터 처음 글자를 쳐다보는 굉장히 정신병적이고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였다. 물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용과 내가 하나 되는 신기한 물아일체의 경험을 하긴 했지만 공부가 되지 않을 때는 하루종일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에너지를 전부 소비하였다.(그렇게 하기까지 성적이 잘 나온 것은 아직도 의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허상이며 의미 없는 행위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마치 모래성을 쌓고 이것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완벽주의를 추구하기보다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멘털과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어리석게도 나는 완벽주의로 인해 강박증이 심하게 왔고 나의 가장 중요한 학창 시절 1년 반을 허무하게 날려버림으로써 처참하게 입시에 실패하였다. 만약 그 당시 내가 완벽하다는 허상이 아무 의미 없고 도달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삶과 즐거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지금도 저때의 경험으로 매일 후회하고 있으며 지금 겪는 나의 문제들이 다 저기에서 파생됐음에 매우 마음이 아프다. 입시에 실패한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나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나 가슴이 쓰리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