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포일러 워닝: 이 글엔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8살때, 바다에 빠져죽을 뻔한 적이 있다. 나를 구해준건 지나가던 아가씨들이었다. 그 젊은이들은 물을 잔뜩 먹은 나를 안아들고, 나보다야 키가 컸지만 발이 바닥에 안 닿아 힘들던 언니를 자기네 튜브(당시만 해도 귀했던)에 태워 안전하게 해변에 있던 엄마에게 데려다주었다. 백만년만에 만난 큰언니와 백만년만에 파라솔 아래 음료수를 마시면서 담소하던 엄마가 놀라서 뛰어왔다. 우리를 돌보라는 임무를 받고도 혼자 저만치 가서 놀고 있던 꼬맹이 외삼촌이 혼이 났나 어쨌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꼬르륵 꼬르륵 물을 먹으면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해가며 보았던 하늘과 물은 기억난다.
타인의 관심과 친절 덕에 나는 살아서 지금의 나이에 이르렀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하다가 드디어 보았다. 주인공 빌 펄롱은 자기와 엄마를 받아들여주고 사랑해주었던 윌슨 부인 덕에 자기가 무사히 자라나 지금 제법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이룩한 소시민의 안전한 삶을 위해, 딸들의 앞날을 위해 자기네 석탄 목재 판매상의 큰손님이자 마을 공동체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수녀원을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당하신 아내의 말씀대로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결국엔 그 선을 넘고야 만다. 자기 딸 같은 나이의 여자애의 고통에 눈을 돌릴 수 없어서, 그리고 자신의 이 삶을 가능하게 해준 타인의 선의란 것에 대해서 배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혼돈과 답답함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슬프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우리는 망설이고 주저하는 펄롱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손을 내밀고야 마는, 이웃들의 시선을 견디며 맨발의 소녀를 집으로 데려오는 그의 떨리는 마음과 온마을-공모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는 알수밖에 없으며, 집에 돌아오면 늘 하는 습관인 손닦기- 바깥의 모든 죄악과 먼지들을 떨어내고 성소인 집에 들어올 준비- 를 마친 후 그가 불확실성 속에서도 보여주는 미소에서 그의 용기를 같이 얻는다.
이제 딸 다섯의 안온하고 보장된 삶은 흔들릴 것이다. 빠듯한듯 넉넉한듯한 살림과 따듯한 가정에서 구김살없이 자라나던 딸들이 앞으로 수녀원 부설 여학교에서 겪을 일들은 차별과 박해가 될지 완전한 배제가 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결국 딸들과 아내가 자기를 원망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외면하지 말아야만 하는 가엾은 존재에 손을 내민 행위가 그에게 힘을 준다. 그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그는 자기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윤리를 최소한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겠다고 실천했고, 스스로가 떳떳하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며 살 수 있다.
아내는 말하길 옛날에 윌슨 부인은 돈이 많았고 여유가 있었으니 당신과 어머니를 도와줄 수 있었고, 우리는 형편이 그렇게 되지 않으니 수녀원을 거스를 수가 없고 원래 그런 엇나간 여자들-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의 삶이란 비참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딸들은 그럴 위험이 없으니까 괜찮고, 그럴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한다고 한다. 일견 타당한 말씀 중에 한 대목 그런 여자들 중에 ‘당신 어머니’가 들어가 있는 것이 함정이다. 도저히 매끈하게 타협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어쩔 수 없는 순리이니 그런 여자들을 내버려둬야 한다면, 펄롱의 인생, 좋은 아내와 좋은 딸들과 함께 좋은 업체를 잘 운영하며 살고 있는 이 인생은 성립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윌슨부인보다 형편이 못한 펄롱의 가족이나 우리들 대다수는 아내의 논리대로라면 물론 면제를 받는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자기의 무사하고 평안한 삶을 희생할 위험을 무릎쓰고 남을 도와야만 하는 의무가 없다. 그러나, 펄롱은 측은지심을 따르는 윤리를 택했고 서로 도와야한다는 윤리를 자기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적극적인 원칙으로서 확인하고, 방어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느라 이 가정생활을 지탱하느라 너무나 힘들던 시절, 구독하던 신문을 끊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면 너무나 걱정이 되기 때문에 버틸 힘이 남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티비뉴스를 보지 않고 꼭 종이신문으로만 뉴스를 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 세상의 고통들과 분란들은 직접 대하기엔 너무나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활자로 접하는 것만이 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지키는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도 좀 컸고, 나도 좀 살아났다고 생각하여서 다시 종이 신문을 구독한다. 고통에 아예 눈돌리지 않고 활자로라면 감내한다. 몇군데에 기부를 하고, 가끔씩 다른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와 가족들을 위해 하는 기도보다는 적지만.
나도 펄롱처럼 나의 존재가 그 윤리를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힘든 헌신와 갈등과 저항과 고뇌와 방전의 세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그 시간 안에서도 끊임없이 양심의 가책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을 한다. 결국엔 나도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언젠가는.
인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