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위 없어져 버려라 / 구병모(2023)
책은 우리의 “삶이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지(80p)” 질문한다. 유전자와 관습이라는 정직한 답안 대신 작가는 ‘이야기’라는 가설을 내민다. 책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 만화, 연극, 그 밖에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무언가의 형태로 우리 주변에 즐비하므로 누구도 이야기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야기(텍스트)는 때로 인생의 이정표가 되고 거의 모든 사람을 구성하며, 언젠가 우리는 자신이 “데이터였다(80p)”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 소중한 이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새로운 도전에 뛰어드는 순간에 언젠가 접했던 이야기의 주인공을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데이터의 원천으로서 책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값을 지니는지 증명하는 것이 『이야기 따위 없어져 버려라』의 표면적인 임무다.
‘책이 사라진 세계’가 배경이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염두에 둔 이야기라고 규명하는 건 다소 위험한 논법이다. 오히려 세계관이라는 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드러나는 촉의 향방은 대척점이다. 세계관에 책의 ‘비소비자’를 가두어 놓고 “공들인 장정, 표지의 무늬나 요철, 가름끈, 낡은 종이 냄새 같은 것은 불필요했다. 이용자의 뇌에 즉각 때려 박을 수 있는 이야기의 질주, 명확하게 드러나는 주제 의식이면 충분했다(29p)”고 일갈하면서도, 결말에 이르러선 이야기의 가치는 확고한 낙인이 아니어서 언제든 절상될 수도, 절하될 수도 있으며 우리의 주체적인 독해가 책을 읽는 행위의 완성임을 설파하며 책의 ‘소비자’를 도마 위에 올린다는 점에서 『이야기 따위 없어져 버려라』의 수신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책을 읽는 사람’에 더 근접하다.
게다가 이야기(레퍼런스) 없이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고, “저자 자신도 남들의 글을 두루 읽고 공부하여 글쓰기를 계속하기보다는 추억으로 박제하는 데 만족했다(26p)”며 텍스트 생산자를 호명하는 모습은 시대의 책임이 소비자에게만 있지 않음의 주창이다. 무릇 텍스트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이는 자웅동체처럼 한몸일 터인데, 진정한 독서가라면 단순히 읽는 행위만으로 충분하다는 안일한 방어기제를 탈피해야 할 것이다. 책을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이야기가 주입하는 메시지에서 벗어날 때 “낡은 설교에 동원되어 소모되고 마는 삶이 아닌, 내 의지로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84p)”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므로.
요컨대, 얼핏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의 위기의식, 책이 사라진 근미래의 가능성을 화두로 삼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선대의 작가와 이야기를 위한 헌사, 텍스트 소비자와 생산자의 능동성과 책임을 고찰하는 심오한 이야기. 형형색색의 어린이용 백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쓰디쓴 극악처방이요, 당근이 아니라 채찍이었다는 깨달음.
“나는, 이야기가 정해 준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어요.” 066p
중요한 것은, 그 옛날의 이야기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아니, 오히려 그 옛날의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비로소 나의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었다는 거란다. 볼품없고 평범하고 평생 남의 밑에서 수모를 당하며 반복 노동을 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가. 누구의 조작도 없이, 회개와 구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그 실체는 낡은 설교에 동원되어 소모되고 마는 삶이 아닌, 내 의지로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083-084p
시작일: 1월 6일 ~ 완독일: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