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봄밤을 걸으며
봄이다. 나는 음악가다. 언젠부터인가.
스튜디오가 낙원상가 4층에 있다. 믹스를 한 곡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인사동이 코앞이다. 남인사마당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경인문화사와 낙원떡집이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꽃샘 추위가 왔고 코끝이 시리다.
인사동을 이렇게 걸은지 4년이 훌쩍 넘었다. 성실하게 사철을 노래하는 버스커들의 이름과 얼굴을 거의 다 안다. 그들의 레퍼토리도. 날 보면 민망해한다.
늘 인사동이 가짜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소한 골목길 따라 걸으면 곳곳에 오래된 진짜배기들이 있지만 큰 길에는 정체모를 집들 투성이다. 예쁜 그릇도 없거니와 바닥에는 Made in China가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자존심도 명예도 없는가. 돈도 돈이지만 무엇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을까.
주말이면 10만 명은 족히 지나다닐게다. 스타벅스가 인사동에 들어온다고 항의하던 상인들은 어디갔나. 큰 길가 상점들은 죄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공산품을 판다. 어쩌다 나들이 온 부모들은 어린 아이에게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을 비싼 값에 사서 아이에게 쥐어주고 연신 사진을 찍는다. 너무나도 이상한 풍경이다.
그냥 상업지구면 그러려니할텐데. 껍데기만 우리 것이고 얼도 땀도 없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 물론 누군가 다른 가능성을 꿈꾸고 도모하는 것이 있겠다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쌈지길. 마찬가지다. 예쁜 것들 더러 있지만 비싸다.
진짜. 진짜에 대해 생각하는 밤이다. 따뜻한 시선을 가졌다고 자부하는데 꽃샘추위 가득한 봄밤에 인사동에 감정이입을 한가득 한다.
내가 만드는 노래가 어쩌면 그럴수도. 실은 이제 시작인데. 경쟁과 히트와 평가 등에 맘이 미리 움츠려있다.
그럼에도, 인사동은 아름답다. 서울의 중심에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발디딘 곳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은 것도 많기에. 길을 걷다보면 꽤 괜찮은 장소들이 있다. 구비진 골목, 쓸쓸한 듯한 정취, 역사가 베인 운치 등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은 아리아를 잘 부르는 중년여성 버스커가 보이지 않는다. 기품있고 사연많은 것 같은 그녀가 부르는 샹송과 아리아들이 듣고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