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아끼는 이들과 함께 바이엔슈테판을
맥주를 하나씩 마셔보기로 한 어느 날, 엄청 많은 맥주 중에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당시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스스로도 어색하던 때여서 머뭇거렸던 기억이 있다. 맛도 모르고 오직 파울라너를 통해 밀맥주가 맛있다는 생각만 가졌던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바이엔슈테판'이었다. 그렇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병을 집어든 이유는 단 하나 병이 정말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에 둘러진 맥주회사의 로고가 무척 맘에 들었다. 이렇게 수려한 디자인이라니 게다가 눈에 띤 것은 바로 1040이라는 글씨. 104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무려 천년에 가까운 세월? 자랑스럽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라고 쓰여있다. 디자인이 멋지고 가장 오래된 맥주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렇게 바이엔슈테판과 연은 시작됐다.
바이엔슈테판 홈페이지에 가면 역사가 자세히 써있다. 725년 12인의 수도사가 세운 베네딕트 수도원의 양조장이 기원이다. 1040년부터 공식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것. 뭔가 성스럽지 않은가. 수도원에서 시작된 맥주여서 맘이 편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바이에른국립 맥주회사가 정식 제조원. 10여 개가 넘는 종류가 있다. 마트에 가면 대부분 헤페바이스비어, 크리스탈바이스비어, 둔켈, 비투스를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다. 헤페바이스비어가 가장 대중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써스티 몽크라는 체인점이 있다. 주로 가는 곳은 이태원인데 야경이 멋진 곳이다. (같은 건물 아래 있는 킨더스(Kinders)도 나름 멋진 곳인데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련다) 녹사평 역 근처 많은 맥주집 중 바이엔슈테판을 파는 곳 중엔 으뜸이 아닐까. 생맥주로 마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팟캐스트 김프로쇼에서 예전에 이미 다룬 바가 있다. 다소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도 있겠다만 에딩거랑 비교하며 마신 적도 있고, http://www.podbbang.com/ch/10186?e=21967581 최근엔, 다시 한번 다뤄봤다. http://www.podbbang.com/ch/10186?e=22245469
첫 느낌은 달콤함이다. 거품이 풍부하고 향이 무척 좋다. 바닐라향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첫 목넘김의 느낌이 무척 부드럽다. 거품과 함께 부드러운 느낌의 맥주가 목으로 밀려 들어간다. 쓰라린 쌉싸르함은 적은 편이다. 누구나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데다 고급스런 맛이 난다. 그리고 목을 넘아간 다음에 살며시 올라오는 뒷맛도 너무 깔끔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풍미가 넘친다.
그야말로 오래된 맥주로서 자부심을 가질만하며, 누군가 이 맥주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자랑스럽게 만다는 맥주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밀맥주의 지존!
개인적으로는 좀더 쌉싸름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효모를 걸러낸 바이엔슈테판 크리스탈 바이스비어도 좋고, 좀 더 묵직한 복(Bock)비어 스타일인 비투스도 좋다. 그리고 수도원에서 시작됐고, 비투스 같이 성인의 이름을 따기도 해서 무척 성스러운(Holy) 기운이 가득하다.
써스티 몽크 이태원점에 창가를 향해 있는 바테이블에 친한 이와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해도 좋고, 일반 테이블에 앉아 다양한 맥주를 맛보며 음식을 곁들이는 것도 좋다. 약간 짭조름한 프렛즐을 겸해서 먹어도 좋고, 약간 매콤한 윙도 좋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바이엔슈테판은 다른 음식과 같이 먹지 않는 편이다. 되도록 그 맥주만 오롯이 맛보는 편. 맥주 하나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이엔슈테판이 가진 맛과 풍미 그 자체로 한끼가 충분히 되는 기분이 든다. 아, 물론 한잔으로는 부족하다. 흔히 맥주가 살이 찐다고 하는데, 알콜음료가 식욕을 당기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을 부르기는 하지만, 정제수, 효모, 보리, 밀 등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몸에 오히려 좋지 않을까. 비타민도 풍부하고 말이다. 같이 먹는 음식 때문에 위가 망가지고 살이 찌는 것일뿐.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맥주만 한잔 저녁에 먹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국내 마트에서도 이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묶음으로 팔기도 하지만 헤페 바이스비어와 크리스탈 바이스비어 2종이 무척 인기가 있는듯. 비투스나 필스너는 약간 판매가 저조하단 인상이 든다. 아무튼 누군가와 밀맥주를 먹어보고 싶다고 할 때, 첫번째부터 너무 끝판왕을 먹는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이것에 맛을 들인 후 다른 것들을 먹어보면 좋은 기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천년이라니. 그 명맥이 유지되는 것도 신기하고(물론 국립회사 수준이라서) 장인 정신이 깃든 영혼이 있는 맥주라서 더 매력이 간다. 느리게 하지만 제대로 멋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