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브니어 Dave Near Mar 14. 2018

봄과 같아서

아직 추운 겨울 이해할 수 없는 일 여전히 많지만

2005년 초, '봄과 같아서'라는 곡을 썼다. 16마디 곡으로 간결하게. 누구나 부르기 쉽게 한번 들으면 익숙한 멜로디와 진행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화성은 너무 뻔하지 않게.


당시 CCM으로 쓴 건 맞다. 그러나 CCM이란 것이 Contemporary를 표방하기에 그것은 Contextual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Common해야 한다고 여겼다. 가사가 촌스럽지 않고 시적이면서도 보편 타당한 정서를 담을 수 있어야 했다. 이 곡을 쓸 때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 전에 발표한 앨범은 '가난한자가 들어간다' 같은 것이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우 뚜렷했다. 12곡 중 10곡에 '가난'이 들어가는 앨범이었다. 내 몸과 맘이 가난하던 시절이었기에 현실 속 가난함이 갖는 나름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이었다. 그 이후에 보편적으로 불릴 노래를 만든다는 건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하고 맘이 허락치 않았다. 무언가 타협하는 기분이 들었고 너무 쉬웠다.


2004년에서 200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여러 모로 심적 고통이 있었다. 자주 우울했고 모든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한 나름의 '직장'에서 적응해야 했고 새로운 공동체 사람들과 부대끼며 결을 맞추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부를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마침내 '봄과 같아서'는 태어났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그분의 손길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그분의 말씀이

내게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처음 소개한건 2015년 8월이었다. 한 여름에 '봄'을 노래한거다. 그럼에도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불렀다. 16마디 노래는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지어서 심적 혼란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대중이 좋아하는 곡을 쓴다는게 뭘까' 를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대중'을 위해서나 '인기'를 위해서 곡을 제대로 쓰질 못한다. 그저 나답게 내게서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보편적이길 바라는 편이기에.


2008년 Advanced Healing 음반 녹음을 시작했고 2009년 발매했다. 그 음반에 '봄과 같아서'는 피아노 버전과 기타 버전이 실렸다. 녹음 당시를 기억하는데 후반 보정은 나름 했지만 한번에 가창한 것이라 느낌이 살아있다. 흔히 말하는 원테이크 녹음이었는데 녹음하기 며칠 전 '브릿지'를 넣었다.


"아직 추운 겨울 이해할 수 없는 일 여전히 많지만

내게 변함없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그분(그대)의 따뜻한 손길이"


개인적으로 일본의 Tamaki Koji를 좋아한다. 안전시대 시절에 잠깐 듣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팬이 되어 그의 음악에 빠져있던터라 '봄과 같아서'의 어떤 뉘앙스는 마치 Tamaki Koji가 부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다. 이 노래가 지향하는 바와 그의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지만 서정적인 감미로움과 톤은 결을 같이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브릿지를 만들 때는 꽤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이 곡은 봄이 되면 크리스천들에게 종종 불려지는 곡이 됐다. 하지만 내 맘은 늘 편치 않았다. 내가 쓴 다른 곡들 이를테면 '생명', 나는 진정한 치유를 바란다', '예언자들', '응답하소서' 같은 곡들이 더 알려지기를 바랐다. 음악적으로나 메시지에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의 쇄락과 망조를 보며,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회의, 염증을 갖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생각의 변화가 많지만 말을 아끼는 편이다. 하지만 '봄과 같아서'가 교회에서 불려질 때는 내게 사랑스런 곡이 아니었는데 추운 겨울 홀로 그 곡을 부를 때면 정말 사랑스러운 곡임을 느꼈다. 아마 사람들이 그 곡을 좋아했던 이유가 이런 것이었을까 싶었다. 만든지 거의 십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왜 좋아하고 아끼는지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조금 더 알리고 싶은 마음보다는 다시 부르고 싶었다. 그저. 단지 다시 부르고 싶었다. 세월이 지난 내 목소리로 부르는 이 곡이 궁금했고 지금은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말없는 인사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꿈꾸고 있고 나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으며, 그대들이 알던 그 때의 나보다 더 깊은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노래로.


어떤 면에서 아직 추운 겨울이고 왜 일어났는지 모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나는 여전히 겨울의 쓸쓸함 속에서 여름의 뜨거움을 갈망하고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봄이 새삼 좋다. 그리고 다시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나름 만족스러웠다. 세월이 지나서 목소리는 더 거칠어졌지만 더 자연스레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여전히 모든 면에서 부끄러움이 많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다.

데이브니어, 그의 '봄과 같아서'도 꼭 들어보시라고. 좋아하실거라고.


"삶의 막막함 가운데 내게 건네는 그대의 손길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내 곁에 있는 그대의 숨결이

내게 봄과 같아서..."




멜론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146168
지니 http://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1041527
벅스 https://music.bugs.co.kr/album/720575
네이버뮤직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2390479
엠넷 http://www.mnet.com/album/2829346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의 끝 봄이 오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