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를 향한 발걸음

Interactive Media Design 2 | 3주 차 글쓰기

by 윤달청






design




중고등학생 시절 내가 영단어 사전을 외우면서 알게 된 'design'의 뜻은 '설계하다'뿐이었다. 평소에 알던 디자인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뜻이었다. 디자인은 무엇일까?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림 그리는 직업은 화가만 있는 줄 알았다. 내 세상의 반경은 지금과 비해 좁디좁았고, 아동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지는 예술가는 전부 베레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한 손에는 팔레트와 한 손에는 붓을 든 모습이었다. 일러스트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일러스트레이터, 웹툰작가, 삽화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업에 대해 점점 본격적으로 알아가면서, 나는 그 모든 걸 다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한 편의 작품 같은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통해 대화를 하는 인물들과 사건, 배경을 그리고, 책 표지와 내지 삽화를 그리는, 그 모든 걸 다 하는 직업.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가 제일 고민거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상태 또한 고민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끔은, 다 잘하고 싶은 게 사실 다 대충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 무엇 하나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하고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내가 끈기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끈기 있는 게 아니라 포기를 못 하는, 즉 미련한 마음을 가득 끌어안고 버티기를 잘하는 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미술 시간에 학교에서 고무판화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 그때 나는 물 위를 헤엄치는 엄마 오리와 그 뒤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 그리고 여백을 채워줄 용도로 길게 자란 (이름 모를) 풀을 스케치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오리를 그린 걸 보면 한결같은 취향이다.)

미술 수업은 마지막 교시였고, 담임 선생님께선 다 끝낸 아이들만 집에 갈 수 있다고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에 가기 위해 빠르게 작업하거나, 대충 마무리 지어 제출한 다음 책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떠났다. 소란스러웠던 교실이 점점 비고 그 빈자리는 적막이 가득 채웠다.


그때 나는 무얼 했던가. 담임 선생님께서 잠깐 교실을 떠났다가 돌아오셨을 때 나를 보고는 흠칫 놀라셨던 게 기억난다. 아마 아직도 남아 있었냐고 물으셨던 것 같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 작업을 만족스러울 만큼 다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내성적인 나는 쭈뼛쭈뼛 이렇게 말했을 거다.


"완성하고 가고 싶어서요..."


선생님께선 허허 웃으시더니 편하게 하다 가라고 해주셨고, 본인의 자리에 앉아 용무를 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빈교실에 혼자 있을 내가 무섭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셨던 것도 같다. 그걸 알 리가 없는 나는 꿋꿋이 내 자리에 앉아 고무를 계속 팠다. 손이 아프면 잠깐 쉬다가 또 열심히 조각칼을 들고 파기를 반복했다. 검은 잉크를 묻혀 종이에 꾹꾹 눌러 나온 그림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클리어 파일에 소중히 넣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나온 라일리를 이루는 핵심 기억처럼, 이때의 기억은 내 안에 견고히 자리 잡아있다. 무언가를 위해 매우 열중했던 적이 있냐면 바로 손을 흔들어 존재를 드러낼 소중한 기억이다.



내게 있어서 디자인은 관성적인 행위였다. 크레파스를 손에 쥘 수 있던 때부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고, 연습장은 캐릭터 낙서로 빼곡했다. 중학교 후문에서 우연히 받은 홍보 노트를 계기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디자인 입시를 시작했다. 어른의 말을 잘 듣는 나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도 열심히 들었다. 어떻게 보면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쭉 따라간 꼴인데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늘 재밌었다. 어쩔 때는 너무 힘들어서 안 하고 싶고, 실력에 정체기가 올 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재밌던 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디자인은, 이번 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단짝친구와도 같다.

너무 사랑해서 가끔은 너무 미운, 그렇지만 차마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그런 사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으면서 디자인을 하고 싶은 내 꿈은 뭘까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디자인은 상업적이고, 나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떻게 상업적인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디자이너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학원 선생님께선 네가 하고 싶은 게 공익을 위한 일이라면, 진로를 '공익광고 디자이너'로 적을 것을 제안하셨다. 난 공익광고 만들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 내가 아는 공익광고는 흰색 배경에 kobaco 로고가 박힌 인쇄 광고뿐이었다. 디자인에 대해 아주 얄팍한 지식만 갖고 있던 과거가 부끄럽긴 하지만, 그땐 그랬다.


대학교에 오고 나서야 제대로 배우고 실감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사람들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직업임을.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발걸음에 나 또한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성장해있을 내 모습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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