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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교동방울이 Oct 23. 2021

"그래도 오늘 뭐라도 했네"


아이디어라는 이름의 곁눈질, 잊혀 가는 약속


예시를 들어본다.

A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아이디어는 번뜩이고 회사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B는 안정감을 추구한다. 약속대로 100이 나오던 건 90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B는 A가 딴생각만 한다며 비토 하고, A는 B의 창의력 없는 모습에 실망한다. 둘 다 회사의 성공을 위해 일하지만 성향은 반대. 모두 필요한 사람임은 부정하지 못한다.


여기서 적확한 업무분장이 필요하다. 로얄티에 더해 충돌을 막기 위한 조각이 중요한 순간이다. 근데 업무분장을 맡은 이가 늪에 빠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 


화합보다는 기계적 결합을 추구하니 문제가 발생했다. 다툼을 외면한 탓에 누구 만족하지 못하는 절충안만 난무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날은 무뎌지고, 무언가를 자꾸 붙이니 혼란이 커졌다.


욕심이 덧붙어 정체성이 흐려지는 일은 흔하다. 랄프로렌 셔츠에 나이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루이비통 벨트를 맨 꼴을 상상해보면 쉬울까.


이럴 때일수록 냉정히 보자고 주장했다. 당연히 #에 1을 더 하는 건 생산적이다. 1+1=3을 만드는 게  모인 이유 아닌가.


하지만 1을 붙이느냐 마느냐 '고민'이 본질을 잡아먹으면 큰일 난 거다. 고민에 쓰는 리소스는 결과의 총량보다 적어야 한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 결국 #x1=#의 도돌이표가 되거나 #&@같은 정체불명의 결과가 나오기 일쑤였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이 말에 동의한다. 자잘한 스킬이나 매일의 반복적인 업무, 뛰어난 사람 뒤를 쫓으며 머리가 커지는 차원의 배움은 있다. 단 제대로 배우려면 별도의 클래스를 듣거나 휴식을 쪼개 자기 계발에 나서야 한다. 


일터에배움에만 몰입하면 본업은 뒷전이 된다. 회사가 복지라는 이름으로 강좌 수강료를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일 테다. 누군가를 채용하고 교육비를 제공하는 건 배우는 모습이 기특해서가 아니라, 성과로 증명하는 모습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배운다는 명목, 성장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에 빠졌다. 배움을 선하는 태도는 조직의 근육을 기르는 일로 포장됐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중립기어만 넣은 채 고객을 기다리게 한다. 무례한 일이다. 소비자는 우리 훈련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Ex) 독후감을 쓰는 회사가 있다고 치자. 글쓴이가 책에만 너무 빠져버리면 결과물은 뒤로 밀린다. 오래 읽을수록 더 많이 쓰고 싶은 마음이 싹트지만, 회사는 퍼포먼스로 돈을 받는 곳이다. 책을 읽는 값이 아니라 글 값으로 급여를 받는 거고, 독서는 회사에서 해도 되지만 독서 방법론과 전달 방법은 스스로 익혀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내가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은 데드라인이다. 대가를 받고 하는 모든 고민은 최종적으로 '좋은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오랜 시간을 쓴 배움과 고민의 결과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 생각이 떠오르고 있다. 좋은 걸 해보자"정도면 그 고민은 실패한 시간이다. 좋은 걸 제대로 얹어야지 모두 때려 박으면 일이 산으로 간다. 칼슘을 듬뿍 머금었다 해도 꽁치 샌드위치는 먹기 싫다. 마티즈에 르세데스 엔진을 얹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실패 자체를 경험하기 위해 '실험'이라는 제목의 괴물이 우후죽순 만들어지면 곤란하다. 그것도 느릿느릿하게. 자기 오르가즘에 빠지니 결국 누구 하나 제대로 꼬시지 못한. 


꾸준하지 못한 모습에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일하자"는 것에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임계점까지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으면 즐거움의 달콤함도 줄어든다. 


"그래도 뭐라도 했잖아"라는 우유부단의 DNA는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들지언정 탕수짬뽕짜장같은 괴기한 결과물난 낳을 뿐이다. 


실패는 소중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전진의 발판이 되어야 한다. 불편부당한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 약속을 지키면서 하는 불평불만. 가랑이가 찢어져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아쉬움의 불씨가 들불로 번져 번져버리기 전에 스스로 다잡아야 한다.


5시 50분에 짐을 챙기고 10분을 대기하는 것보다는 바로 집에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뭐 그리 대단한 게 나오겠는가. 하지만 버리고 외면하는 시간이 루틴이곤란하다. 적어도 근무 시간에는 집중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노예 근성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홈런을 친 사람이라면 10분이 아니라 30분 먼저 가도 누가 뭐랄까. 


다만, 홈런을 치기 위해 꾸준히 10분을 채워나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소위 멋진 조직(이라 주장하는 곳들)이 말하는 자율에서 나오는 책임 아닐까. 습관화된 책임감은 날 지켜주는 재산이 되고, 약속을 지키는 습관은 신뢰라는 선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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