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ob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교동방울이 Oct 20. 2021

"많이 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연봉이 오르나요?"

[버티거나 떠나거나]  태업인가 무능인가

커리어 패스로 톺아보는 회사 일기. 


이직이 잦았다.


잦은 이직은 분명 취업 시장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준다.

당연사측에서는 편견 또는 분석이 들어가기 마련. 환영보다 거리낌이 앞서는 이유는 대략 이렇다.

1) 조금만 푸시가 강해지면 포기할 것이다.
2) 항상 사표를 품고 있어 컨트롤이 힘들다.
3) 동료들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
4) 업무 퍼포먼스가 떨어진다.
5) 회복 불가한 사고를 쳤다.

순간 떠오른 것만 이 정도니 날카로운 인사담당자들은 갑절 이상 이유를 찾아내겠지.


어떤 이유에서는 이직은 네거티브가 포지티브를 넘어선다.

열심히 버티고 다니는 동료들을 존경한다.


나를 변호하는 글은 아니기에 드라이하게 퇴사 사유를 되짚어 본다.


다행히 앞의 5가지는 비껴 나갔다.

회사의 도산을 제외하고-

가족의 건강을 돌봐야 했다

체불 이슈가 있는 회사

가족을 돌보느라 끊겼던 기자 생활을 다시 하고 싶어서

+

태업에 대한 아쉬움

아이디어를 빙자한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반감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아니 잊는다.

 

전자는 이해를 (요구)할 수 있는 이유.

후자는 안 좋게 보려면 부정적인 이슈다.

 

후자 이야기를 풀어 본다.



① 태업에 대한 아쉬움, 아니 무능?


앞서 '열심히 버티고 다니는 동료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지금 할 이야기는, 열심히를 배제한 고인물의 위험성에 대한 스토리다.


흔히 조직문화라 이야기한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이 과정에서 1+1=3을 만들기 위해 조직이 꾸려진다. A는 냉정한 사람, B는 감성적인 사람, C는 무던한 사람, D는 까다로운...처럼 사회 축소판이 만들어진다. 퍼포먼스로 틀면 '양'으로 승부를 보려는 사람, '질'로 한 방을 노리는 사람 등이 있겠다.


회사생활이 힘든 건 이 개성들을 제어하는 지난함 때문이다. 냉정한 아이디어를 감정적으로 실행하려 들면 충돌이 생긴다. 뭐든 좋다는 무던함에 까다로운 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중요한 게 구성원의 업무 톤을 맞추는 과정이다. 모든 회사에는 조직을 다듬는 중간관리자나 리더라는 사람이 있다.


단, 이들이 톤을 잘 맞추려면 선결 조건이 있다.


회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로열티가 우선이다.

아, '내 회사처럼 불사른다'나 억지로 '주인의식을 갖자'는 뜻은 아니다. 월급쟁이 아닌가. 대신 받는 급여 정도는 무조건 해내겠다는 책임감은 필요하다. 최선을 다했다면 퍼포먼스는 올라온다. 태도에서 성과가 나온다고 믿는다. 성과가 나오면 회사를 내가 지켜야 할 재산(동시에 나의 재산)으로 느끼게 된다.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인가"에  당당히 YES를 외칠 수 없으면 월급루팡이라는 사실은 솔직히 인정했으면 좋겠다. 


이직 사유로 돌아오면,


하루 기사 15개를 쓰다 3~4개 정도면 충분한 매체로 옮겼다. 매일 기사 악몽을 꾸던 차에 잘된 일이다 싶었다. 하던 가라였는지 아님 자신감의 발로였는지 예닐곱 남짓을 썼던 것 같다.


평화롭던 어느 날. 동료가 말했다.

"무리하지 마요. 기사 많이 안 써도 돼요. 그럼 저도 써야 되는데."


각자의 용량이란 게 있는 걸 잘 안다. 전 직장에서도 용량을 따라잡지 못해 자책한 기억이 있다. 배려 담긴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여기서는 훨씬 여유가 있는 상황. 걱정 말고 내가 다 커버한다고 했다. 그래야 했다. 전할 소식은 전해야 하고, 무엇보다 적은 기사 볼륨과 비례해 독자가 줄고 있었다. 회사가 위태위태한 건 신문의 위기 탓으로 생각했는데 들어가 보니 내부에서 납품? 되는 기사 퀄리티가 굉장히 떨어졌다.


"혼자 더 쓴다는 것도 좀 그래요. 왜 스스로 힘들라 해요. 솔직히 제가 무능한 사람처럼 비칠 거 같아요. 월급을 많이 주는 데도 아니고. 우리가 열심히 해도 몰라요."


두 번째 말에 갸우뚱했다. 그럼 일을 안 하면 연봉을 깎나. 그런 회사는 아니었다. 무능으로 비치는 게 아니라 명확히 무능+태업이었다. 차라리 부족하니 도와달라. 아님 필요한 건 서포트하겠다고 말해줬으면 좋았겠다. 열심히 해도 모를까?  회사가 정말 개개인의 퍼포먼스를 관찰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난 정말 힘들지 않은 업무량이었다.


어차피 연봉 인상률은 드라마틱하지 않으니 현상 유지를 원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 '워라밸'이나 '회사는 날 구해주지 않는다'는 명제를 제치더라도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한다. 휴식은 소중하고, 회사는 냉정한 곳이다. 다만, 따뜻한 곳으로 만들 노력을 했는지도 돌아보자는 거다.


고민이 시작됐다. 나보다 더 하는 동료가 있으면 비교당한다는 생각-> 한 사람이 도드라지면 내 급여 인상은 소원해진다는 생각이 깔렸다고 해석했다. 반대로 나는 파이를 키우자는 거였고, 그대는 현상 유지를 해도 좋으니 내가 메꿔보겠다는 뜻이었는데 생각의 톤이 달랐다. 펐다.


인간적으로 관계는 좋아 가끔 퇴근길을 함께했던 동료기에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한 급' 낮춰 이직한 터였고, 그는 항상 상향 이직을 원했다.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하는 걸로는 가고 싶은 매체는 쉽지 않을 겁니다. 가더라도 업무 강도가 최소 2배입니다. 물론 월급은 2배가 안 될 거예요. 당장 점프할 게 아니라면 우선 매체를 키워봅시다."

"네 고마워요. 저도 초심으로 돌아가 볼게요."


초심의 첫 발인 다음날 보고 시간. 이미 조간에 깔린 소식을 그대로 베껴온 발제가 올라왔다. 한나절 늦은 기사에 새로울 것 없는 소식. 기사는 매체의 얼굴인데, 월급을 논하던 이가 못생긴 얼굴을 자랑스럽게 내밀면 어떡해야 하나.


답을 내려 노력해봤다. 케미스트리를 위해 티 나지 않게 일을 했어야 했나? 혼자 너무 나섰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루 어떤 기사가 나갔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미 3~4일이 지난 이슈를 새로운 소식이라며 발제해도 게이트키핑이 전혀 되지 않았다. 기사에 사람 이름이 틀린 사례가 나왔고, 고치자고 하니 애 먼 부분이 고쳐졌다. 고쳐야 한다는 말은 잘난 척 섞인 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만있자. 그래도 우리 존재 목적은 좋은 기사 쓰기 아니었나.


회사도 문제를 알고 있었다. 여기서 리소스의 논리가 작용했다. 오랜 시간 고인 사람들을 바꾸기에는 한국의 시스템은 근로자의 편이었고(이건 추후에 자세히), 새로운 피가 좌충우돌해주길 바랬다. 나가야 할 사람들이 안 나가고 자리만 지킨다는 말과 함께.


나도 내 태스크가 힘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난 실패했다. 내 포지션도 관리자가 아니었다. 커피나 술, 산책까지 동원해가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돌아오는 스몰톡은 늘어난 개인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나 어디가 돈을 더 준다더라 정도였다.


또 혼자 남은 사무실. 공회전했던 몇달을 돌아보니 진심으로 존경할 사람은 없었다.

워라밸은 지켜졌어도 가슴 속 허전함이 컸다.

흠집 내고 싶지 않은 이력서지만, 한 줄을 뒤로 밀기로 했다.

사표를 냈고 혹여 자리잡지 못하면 돌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고마웠다.


이후 새로 들어온 두 명의 직원이 회사를 또 떠났다는 말이 들려왔다.



② 아이디어라는 이름의 곁눈질, 잊혀 가는 약속


예시를 들어본다.


A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아이디어는 번뜩이고 회사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B는 안정감을 추구한다. 약속대로 100이 나오던 건 90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B는 A가 딴생각만 한다며 비토 하고, A는 B의 창의력 없는 모습에 실망한다. 둘 다 회사의 성공을 위해 일하지만 성향은 반대. 모두 필요한 사람임은 부정하지 못한다.


여기서 적확한 업무분장이 필요하다. 로얄티에 더해 충돌을 막기 위한 조각이 중요한 순간이다.


근데 업무분장을 맡은 이가 늪에 빠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


화합보다는 기계적 결합을 추구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다툼을 외면한 탓에 누구 만족하지 못하는 절충안만 난무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날은 무뎌지고, 무언가를 자꾸 붙이니 혼란이 커졌다.


냉정히 봐야 했다. 당연히 #에 1을 더 하는 건 생산적이다. 1+1=3을 만드는 게 모인 이유 아닌가.


하지만 1을 붙이느냐 마느냐 '고민'이 본질을 잡아먹으면 큰일 난 거다. 고민에 쓰는 리소스는 결과의 총량보다 적어야 한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 결국 # X 1=#의 도돌이표가 되거나 #&@같은 정체불명의 결과가 나오기 일쑤였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이 말에 동의한다. 자잘한 스킬이나 매일의 반복적인 업무, 뛰어난 사람 뒤를 쫓으며 머리가 커지는 차원의 배움은 있다. 단 제대로 배우려면 별도의 클래스를 듣거나 휴식을 쪼개 자기 계발에 나서야 한다. 일터에배움에만 몰입하면 본업은 뒷전이 된다.  누군가를 채용하는 건 배우는 모습이 기특해서가 아니라, 성과로 증명하는 모습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배운다는 명목, 성장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에 빠졌다. 배움을 선하는 태도는 조직의 근육을 기르는 일로 포장됐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중립기어만 넣은 채 고객을 기다리게 했다. 무례한 일이었다.


사회에서 내가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은 데드라인이다. 대가를 받고 하는 모든 고민은 최종적으로 '좋은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좋은 걸 제대로 얹어야지 모두 때려 박으면 일이 산으로 간다. 칼슘을 듬뿍 머금었다 해도 꽁치 샌드위치는 먹기 싫다. 티코에 메르세데스 엔진을 얹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자율과 존중이라는 자기 만족 속에서 고객들은 잊혀져 갔다. 실험-사이드 프로젝트가 난무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뿐이었다. 실패 자체를 경험하기 위해 '실험'이라는 제목의 괴물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그것도 느릿느릿하게.


"어차피 또 흐지부지 텐데"

"그래도 뭐라도 했잖아"

우유부단의 DNA가 조직을 감싸고 말았다.



p.s.

5시 50분에 짐을 챙기고 10분을 대기하는 것보다는 바로 집에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뭐 그리 대단한 게 나오겠는가. 하지만 버리고 외면하는 시간이 루틴이곤란하다. 적어도 근무 시간에는 집중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노예 근성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홈런을 친 사람이라면 10분이 아니라 30분 먼저 가도 누가 뭐랄까. 다만, 홈런을 치기 위해 꾸준히 10분을 채워나간 사람이 돼보자는 거다. 그게 소위 멋진 조직(이라 주장하는 곳들)이 말하는 자율에서 나오는 책임 아닐까. 습관화된 책임감은 날 지켜주는 재산이 되고, 약속을 지키는 습관은 신뢰라는 선물로 돌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현영 기자를 보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