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미디어의 취재가 들어가면 해당 조직의 PR파트가 응대한다. 회사 규모에 따라 해당 파트가 없는 곳도 있지만, 임시로라도 담당자를 정해 자료를 제공하고 질의에 답변한다.
취재 대상이 응대에 리소스를 쓰는 건 '잘한 일 자랑'이 1차 목적이다. 긍정적인 면을 미디어로 알려 경제적 효과를 얻겠다는 것. 그래서 PR 파트가 없을 경우회사 사정을 잘 아는 살림꾼이나 책임자 레벨까지 나서 시간을 빼 응대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파급력은 분명 예전만 못하다. SNS를 필두로 수많은 채널이 있는데 굳이 미디어라고 떨 이유가 없다. 그래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취재가 들어오면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정제한 워딩을 제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왜일까?
공신력 때문이다. 기자가 팩트체크를 한 정확하고 정직한 정보라는 이미지는 진위 검증이 힘든 블로그나 팝한 SNS가 이기지 못하는 효과다. 아직까지는 확실히 그렇다. 신문에 실린 이름이 블로그보다는 낫다는 것.
매체들도 이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영업부라는 곳이 있고, 지면이나 배너 광고를 사면 취재를 서비스로 해주는 내용의 제안서가 돌아다닌다. 정량 지표가 중요한 PR 파트일 경우 비용 문제만 제외하면 가볍게 생색낼 수 있는 윈윈 상품이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어요.
연합뉴스가 포털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네이버와 카카오 뉴스페이지에서 볼 수 없다. 연합뉴스는 국가로부터 수백억의 지원금을 받는 국가기간 통신사다. 출입처가 모두 뚫려있고, 제1 통신사 지위 덕에 최소 20여개 이상의 매체가 연합을 그대로 따른다. 기자들이 신뢰하는 언론사 1위도 연합뉴스다. 일반인들의 신뢰도는 10위였지만, 방송과 포털(네이버), 한겨레,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정파성이 진한 곳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1등 매체였다. 거칠게 말해 팬덤이 명확한 신문을 빼면 가장 파워가 세다는 뜻이다.
이런 연합뉴스가 사단을 맞은 건 '기사형 광고' 때문이다. 대행사를 통해 건당 일정액을 받고 기사 형태의 광고를 해줬다는 것. 가장 파워가 센 언론의 공신력이라는 무기를 돈과 바꿨다가 크나큰 페널티를 먹었다. 이들은 포털의 조치에 가처분 신청을 하고 아예 검색에서도 빠지기로 했다.
지금 PR 업계에선 이만한 변곡이 없다. 연합뉴스가 제대로 걸렸을 뿐 거의 모든 매체가 기사형 광고 상품을 운영할 만큼 일종의 문화였다. 이제는 유료 집행이라는 쉽고 빠른 업무길이 막혔고, 타성에 젖어 네트워크를 쌓는데 소홀했던 담당자들은 서둘러 기자들의 메일주소를 모은다고 한다.
여러모로 존경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 PR인력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장과의 다툼'이라고. "회사와 대표를 최대한 잘 포장하는 게 당신의 일"이라는 사장과, "이 정도 잘남으로는 눈길을 못 끈다"는 홍보인의 다툼.
싸움은 예상외로 쉽게 화해에 이른단다. 돈을 주고 산 지면 인터뷰를 본 CEO. 그가미소를 띄우면 상황 종결. 웃을 수만은 없는 도시전설이다.
앞으로가 관건이다. 각 조직의 홍보 역량 차이가 더 눈에 띌 것 같다. 돈으로 인터뷰를 살 수 없고, 밍밍한 보도자료는 '쫙' 깔리지 못할 테니 작은 워딩 하나, 소소한 야마 하나를 더 강조하는 PR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해지고, 여태껏 보지 못했던 리스크도 발견할 테니 잘된 일이라 해야 하나.
열심히 일하는 취재기자들은 또 무슨 죄일까. 피땀 흘려 취재한 기사가 광고 취급을 받는 현실. 실제로 펼쳐졌던 불편한 사실. '공익을 위한 사명'만으로 충성을 요구하는 게 지금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