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삼권분립의 나라니까 법을 만드는 건 아니겠고. 얕은 지식을 끄집어 보면 검찰을 관할하고 교도소, 출입국 심사 관리. 재판 감독 등이 법무부의 일이다. 출입국을 관리하니 아프가니스탄에서 입국하는 이들도 법무부가 맡았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도마에 올랐다. 고위 공무원, 게다가 이런 중요한 일은 하는 법무부의 넘버 2이니 권력자라 해도 무리가 없다. 지인 중에 그가 있다면 적어도 이상한 사람을 사귀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권력을 갖춘 데다 똑똑함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이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의 '우산 의전'이 문제가 됐다. 한국으로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정확히는 까다로운 난민 인정 절차를 피하기 위해 특별 기여자로 들어온 사람들을 맞는 자리였다.
현황을 브리핑하는 그의 뒤에 국가인재개발원 정문이 보인다. 부담이 없었을 리 없는 진천 시민들과 인재개발원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실외 브리핑은 그림이 중요하니 제대로만 됐다면 그럴싸한 브리핑이었겠지. 추적추적 내렸던 그놈의 비만 아니었다면.
황제 의전이냐. 카메라 기자들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이었냐를 돌이켜 본다.
몇 번 안 되는 경험이긴 하지만 카메라 선배들에게 쌍욕을 먹은 적이 있다. 워딩도 기억난다. "야 머리 치워", "어이 거기 (워딩을 위해 댄) 핸드폰 든 새끼!!!".
TV에서 본 유명인의 경찰서 출두 장면이나 교도소 석방, 국회에서 기자들이 의원들을 따라가며 질문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오롯이 (명예롭던 불명예던) 주인공의 얼굴을 접할 수 있는 건 이 고함에 옆으로 빠져 선 기자 혹은 수행원들 덕이다.
이게 사단을 낳은 모양이다. 어느 현장에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사건이 됐다. 법무부 직원들은 직속상관이 비 맞는 모습을 용납하기 힘들었던 듯하다. 카메라도 이날 기상을 생각해 요청해야 했다.수행비서는 카메라들한테 들은 쫑크에 위축됐을 거다. 포커스를 피해 자세를 서서히 낮추던 비서가 결국두 무릎을 땅에 대 버렸고,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카메라를 제외하고 등장인물은 셋이다.
1. 수행비서
파장을 떠나 최선을 다해 일했다. 당연히 죄가 없다. 의전과 수행이 자신의 업무다. 가슴은 아프지만 업무상으로만 보면 전혀 문제없이 능력을 보였다. 우왕좌왕하거나 브리핑을 지연시켰다면 매끄럽지 못한걸 테지만 저린 다리까지 접어가며 차관 보좌에 힘을 쏟았다. 무릎을 꿇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2. 차관
수행비서와 일정을 같이하는 차관은 그와 매일 대화를 나누고, 때때로 사적인 이야기도 조금 나눴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우산을 씌워달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도 만약 써야 한다면 이 비서가 씌워줄 거라 생각지 않았을까. 한발 더 보면 자기 한 손으로 우산. 한 손으로 브리핑문을 넘겨야겠다 정도가 머릿속에 있었을 터. 권위적인 캐릭터라면 비도 오는데 애들이 현장 어떻게 마련해놨나 따위의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3. 법무부 직원들
가장 아쉽다. 만약 우산이 필요하면 카메라 생리를 아는 공보실이 앵글을 고려했어야지. 그게 아니면 천막을 쳐야 했고, 정무적 판단을 붙이자면 같이 비를 맞으며 수십 시간 생사의 길을 넘어온 난민들을 환영해야 했다. 그것까지 마음에 걸리면 노란 민방위복이 보이는 투명한 비옷 따위를 입히는 정도. 논란이 커진 지금 결과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제공한 사람들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카메라 기자들의 욕심. 비키라고 해놓고 그 사진으로 문제를 재생산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비켜주니까 이를 꼬집은 꼴이니... 헌데 또 다른 직원이 손으로 수행비서의 팔을 내린 영상을 보니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차관에게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이 법무부 직원들을 관장하는 게 차관이다. 강 차관은 법무부 실장으로 일하다 지금 자리에 올랐다. 장관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차관은 임명 관문만 넘으면 된다. "법무부 업무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탁월한 법률 전문성을 바탕으로..." 청와대의 임명 이유처럼 이해도와 전문성은 갖췄지만, 법무부 어린이 홈페이지에 업무설명으로 적은 '인권보호'는 잊었나 보다.
사퇴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한다. 높은 자리라는 건 그만큼 책임이 있고 할 일도 많은 자리다. 계속해서 공격을 받는 건 법무부 전체에 대한 부담이겠지만 임명 2달이 되지 않은 차관이다. 너무 섣부르다. 논란에 휘말려 내려오는 것보다는 헌신과 능력으로 만회하는 게 제대로 된 자세다.
이날 인재개발원 인근 강우량은 시간당 4mm~6mm가량. 가랑비를 피하려다 여론의 쓰나미와 맞닥뜨렸다. 이미 난민들의 이야기는 잊히고 있다. 그 잊혀짐을 만든 브리핑 자리에서 본인이 한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아프간 가족들은 한국에서의 첫날을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에게는 정말로 기적과 같은 하루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악몽 같은 하루였겠지만 기적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걸 꼭 기억하길.
기적을 낳은 '미라클' 작전은 법무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걸. 그 노력을 한 순간에 희석시켜 버린 건 찰나의 판단 미스였을지 모르지만 그 자리는 미스를 용납하지 않는 자리라는 걸.
"저희 직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진력을 다하는 숨은 노력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미처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법무부 직원들 역시 8월27일의 진천을 잊지 말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언론도 이제 아프간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후 불편부당한 사례는 없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포털에는 'Pick'이라는 제도가 있다. 언론사가 기사를 내며 이 픽을 걸면 메인감 또는 주요 소식으로 생각하는 뉴스다. 우산 의전 기사에는 어김없이 픽이 붙었다. 오늘부터는 법무부가 이 큰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는지. 난민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를 담은 기사를 '픽'해주길 바란다.
이 사진의 제목은 '만나서 반가워'다. 꼬마의 미소가 눈물이 되지 않도록 계속 감시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