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능력은 개발 스킬만큼 중요하다
2004년 12월부터 나름 분야의 솔루션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1위를 하던 회사에서
몸으로 구르고 익힌 프로그래밍 및 잡다한 업무 능력을 쌓아갔다.
회사에서 내가 개발자라고 해서, 개발이 아닌 업무들을 맡게 되었을 때 불평을 한 적은 없다.
난 신기하게도 계속 계속 프로젝트라는 걸 해서 내가 만든 결과물을 론칭하는 과정들이 즐거웠고,
개발자들이 싫어하는 기획회의부터 참여하여 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파악하는 과정을 먼저 가졌다.
어릴 적 공부하던 습관도 부분 부분을 외우는 것보다
큰 틀을 잡고 그 속에서 세부사항들을 이해한 뒤 암기하던 스타일이어서
일 역시 그것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 이해 뒤에 내가 해야 할 부분을 파악하고
그게 내 이해와 다르면 기획자와 조율하는 과정 속에 불필요한 기능들은 제거하고
시간을 벌 수 있거나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시하는 나름 소통하던 개발자였다.
그런 능력을 PM이나 팀장님들이 높이 샀고,
은근슬쩍 기획 업무 및 PL업무도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시키셨다.
그래서 자연스레 주니어 개발자임에도 점점 고객들과 마주칠 기회들이 늘어났고,
언제나 프로젝트 끝에 내일처럼 해결해주는 내 모습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2009년, 슬럼프를 겪고 나서 부서를 옮겼지만,
새로운 솔루션 론칭으로 혼자서 파트장을 맡았는데, 프로젝트가 대박 늘어났다.
그건 견딜 수 있었는데, 개발사의 한계가 느껴졌다.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보다는 고객들의 프로젝트다 보니 하는 일들이 반복되어
어느 날은 그냥 작업자인지 개발자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해서, 조금 더 큰 곳으로 옮겨보자는 막연한 결심(퇴사 결심!!)을 했을 때부터,
업무의 프로세스를 정리해 갔다.
없던 문서도 만들어 누가 들어오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였고,
내가 퇴사한다면 나 대신 그 자리에 오르게 될 분에게 열심히 업무를 많이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나날이 흘러가던 시간 속에
예전 같은 팀에서 일했던 팀장님이 대기업 자회사로 가셔서 입사를 제의하셨다.
하여, 내부 추천이지만 공채를 통해 서류, 기술면접, 임원면접, 인적성 테스트를 통과하여
입사했다.
당시 입사 지원을 할 때 내부 추천인을 쓰던 란이 있었는데,
만약 추천을 받지 못했다면 내 스펙으로 합격이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언제나 깔끔하게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면 이직 시 그 사람에 대한 체크를 하는 회사들도 많고, 또는 이직의 기회도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자들이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본인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신입 개발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개발일 뿐이지.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다.
개발만이 개발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개발을 통해 일의 해결방법을 찾는 게 개발자일 뿐이다.
퇴사 과정의 나름 진통을 겪었지만, 마무리는 잘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기에
이직 바로 전날까지 일을 해주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한 회사에서 7년 가까이 일했기에, 새로운 곳에서 그것도 큰 조직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고 즐겁게 일 할 수 있었다.
큰 회사다 보니 프로세스가 있었고, 공유나 학습이 일의 한 부분이었기에 서로 아는 지식을 공유하는 여러 자리가 많았던 것도 즐거웠고, 한 사람 한 사람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나도 누군가에게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던 듯하다.
작은 조직은 유연하고 업무를 배우는 것에 절차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기는 하지만,
작다 보니 누군가와 협업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눈높이를 높여 직장을 찾는 신입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때의 직장생활의 기억은 즐겁게 남아있다.
이런 좋은 회사를 1년 6개월 만에 퇴사하게 되었던 이유는, 역시 개발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고객이 되어, 개발사를 리딩 하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개발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없었고,
관리는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에 다시 개발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누군가 똑같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면.. 말리고 싶다.
퇴사한 회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는 것과 같다.
헤어진 이유가 있는데, 그걸 잊고 추억만 남아 그리워하니 말이다.ㅎㅎ
어떤 기회가 되던 큰 회사로 옮길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기회는 공채보다는 일을 통해 만난 여러 사람의 추천이 더 빠른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