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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uk Kwak Aug 18. 2016

슬럼프를 만나다

끝이 없는 깊은 웅덩이

3년 차까지 매번 성장한다 생각했다.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며, 조금씩 잘 한다는 자만심도 생겨갔다.


그런데 그냥 29 어느 날...

개인적인 일상이 조금 부서진 그때쯤

그렇게 갑자기 슬럼프가 왔다.


하루하루 발전한다고 생각했던 내 개발 스킬도

매번 같은 방식인 것 같고, api doc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오픈 라이브러리가 새로 나올 때

처음 적용해보면, 삽질을 하고 잘 안 풀리는 빈도가

늘어가니 개발자가 맞는 사람인가.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 팀장님이 회사에서 erp 유지보수를 우리 팀에서 맡겠다고 가져오시고, 그 일을 내게 맡기셨다.

그 erp 유지보수는 erp 납품업체에서 이틀간의 교육을 받고 적용하는 거였는데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결재라인 수정하는 법, 프린터 버튼 다는 법 등의

설정을 알려주는 거였지 개발 관련이 아니었고

다른 회사에서는 경영지원팀원들이 듣고 있었다


교육 이틀째 되던 아침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가기 싫어 늦장을 부리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이였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내가 그 많은 일들을 하고도 팀장님은 날 이런 취급을 하는구나.. 그건 내가 너무 부족해서인가보다.. 하고 어떻게 할지 상상을 해보았다..

왜 이렇게 힘들게 불행하게 사는 걸까...

대학원을 가자.. 돈은 얼마 없으니 다시 대구로 내려가

국립대학원으로 가자.. 그 결정을 찰나에 내리고 택시를

돌려 집으로 향하며 핸드폰을 껐다


생각해보면 무책임하기 이를 때 없어 보이지만, (변명 맞다..)

그 당시 힘든 일은 나에게만 시키고

내가 해보고 싶은 연구과제 같은 것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시키는 팀장님을 보면서 깊은 화남을 느낀 것 같다

누군 하고 싶어도 기회도 없고, 계속 묵묵히 일하니 편하게 보이나 이런 억울함에 당신도 당해봐라 라는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본부장님에게 메일을 썼다

퇴사하겠다고.. 지금 너무 마음이 혼란해 내일까지 쉬고

그다음 주부터 인수인계하고 나가겠다고..


그리고 세상에 평화를 느끼고 잠이 들었다..

한창 자고 또 자는데 멀리서 자꾸 벨소리 같은 게 들렸다.

문을 여니.. 나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냈던 pm이 와 있었다. 우리 팀도 아닌데...

그분이 말씀하셨다.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으니 회사로 가자고... 나는 그러려면 가시라고 문을 닫으려니.. 그럼 퇴근 후 자기와 얘기를 하자고 했다.


자고 씻고 나가는 와중에도 마음이 흔들릴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거랑 다르게 자기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프로젝트도 힘들지만 잘 끝나고, 자기는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행복한 새신랑인데 음악을 듣고 가는 길에 까닭 없이 울었다고 한다..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그때 나도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 간단한 얘기에 엉엉 울어버린 것 같다..

울음을 그친 후, 내일 가서 잘 정리하겠다고.. 얘기 후 헤어졌다


다음 날..

회사를 갔더니 팀장님이 나와 친한 모든 사람들과 면담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어떤 낌새가 있었는지.. 왜 그러는지 물었다고 했고..

나의 상황을 잘 알던 사람들이 당연한 나의 화난 상황에 자기 같으면 애당초 예전에 퇴사를 했었을 거란 말들을 하니. 아차.. 하신 것 같다..


그리고 마주한 팀장님께..

난 그다지 구구절절 말하기도 싫었다.

그냥 내가 실력이 안 되는 것 같아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회유를 하던 팀장님 얘기가 귀에 부딪치고 떠나갔다.


그다음 본부장님..

하나의 그래프를 그려주셨다..

계단형인데 올라가는 부분이

직선은 아니고 사선..

즉, 모든 능력에 사선처럼 일취월장하다

평행선을 그으며 벽에 부딪치고

그 과정 후에 다시 사선으로 실력이 확 뛴다고..

내가 하는 고민은 그 연차에 쉽사리 겪게 되는 슬럼프라고... 그 말은 와 닿았지만 퇴사하겠다니 부랴부랴 얘기해 주는 그 모습들이 싫었다...

내가 희생을 할 조직의 모습은 아닌 것 같고, 내가 필요하니 저러 지란 생각이 들었다...


사표 수리는 안되고 그냥 답 없이

면담들로 하루가 가고..

그다지 친하진 않았던  회사 사람 중 한 명을 만났다.


그:야 너 퇴사한다며?

나:소문 참 빠르네요..

그:왜?

나:대학원 가려고요

그:합격했어?

나:아뇨 이제 가서 준비하려고요

그:회사서 해. 회사에 말해서 6시 퇴근 보장해달라고 하고 회사서 하면 되지.

밖은 춥고 배고파. 난 사장님과 다른데 안 가는 조건으로 연봉 높였어.


이 짧은 대화에서 뭘 느낄 수 있을까?

난 머리를 꽝하고 치고 가는 걸 느꼈다

그건 바로 회사가 나와 협상하는 곳이라는 기본적인 사실 말이다...

내가 회사의 의미를 알았던가....

그냥 열심히 하면 저절로 알아주고 연봉도 올려주며 승진도 저절로 다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근데 그렇지 않음에 서운했던 것이다..


앞편에서 연봉협상이 쉬웠던 것도 이때 깨달음이 큰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나같이 회사는  월급을 주는 곳이다 라는 의미 외에 여러 가지를 알고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은 잘 없으리라 생각한다.

회사가 내게 월급을 줬으니 일만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고,

직원이 성장해야 회사도 성장하는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져야 회사도 사람도 큰다.


내가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같이 피해의식이 생기기 전에, 

커리어 패스를 상의하고 면담할 수 있는

롤모델이나 멘토를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요즘은 자신의 직관이 최고라는 의견들도 많은데..

면담을 하고 모든 선택은 본인의 마음에 맡기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슬럼프가 온 그때, 우울증이 너무 심해 위의 과정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 후에 어떻게 극본 한지는 명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협상의 깨달음을 얻고, 업무를 조정했지만 

사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건 팀장님은 해결방안이 없었고,

결국 1년 후에 팀을 다른 곳으로 옮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힘들 때 주변 사람들에 징징되어 봤자 

듣는 건 너만 힘드냐. 너는 왜 맨날 힘드냐라는 말 들이라,

책에 많이 의존하여

스스로 치료해갔다.


그 당시 읽은 책은,

아래 두 권 정도가 기억이 난다.



지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슬럼프가 올 때마다 

퇴사를 하고 다른 인생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보았지만,

결국 내 안의 문제를 정확하게 마주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없다고, 상황이 안 좋다고,

자꾸 외면하지 말고,

가끔 진지하게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

부족한 인내와 용기 등을 인정하고,

회사라는 곳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슬럼프는 어느 순간 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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