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이해하자
어릴 때부터 권선징악의 결말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답을 찾아야 하는 학교 시스템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답이 있는 걸 좋아한다.
또는 맞다, 아니다로 가르는 걸 좋아한다.
그럼으로인해 내 정신세계는 무척 편협했던 것 같다.
내가 개발자가 천직이라 믿었던 이유는 0과 1의 비트 세상
true, false 의 세계여서 그런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일에서 못할 일은 별로 없었다
모르면 공부하거나 교육받거나 자료를 찾아보면 웬만해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 만족하여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고
모니터를 통해 답을 얻어왔다.
그런 세상이 무척 편하고 좋았다.
그렇지만 개발을 하는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아날로그적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도.대.체.가 왜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이해 안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원일 땐 그저 상사 뒤에서 그냥 혼자 욕하거나, 술자리의 안주로 씹어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직접 내가 누구를 만나 협의를 하고 결론을 짓고 각자 할 일을 정하는 과정은 뒤돌아 생각해보니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을 다 나같이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나라면.. 나라면...
그래.. 그것도 좋다..
그런데 시간이 더 흘러보니 그 "나"라는 자체를 나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다
작년부터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바쁘고 힘들어 쌓아놓기만 했던 짐들이 볼 때마다 스트레스였고, 집에서 휴식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버리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는 그냥 물건을 버리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끝에 내가 가장 비우고 싶은 건,
내가 정리하고 싶었던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나의 집착, 미련, 같은 것들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그러면서 우연히 미니멀 라이프라는 책과 생활방식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고
정보를 찾아 들어간 카페에서 나와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 비우고 정리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어릴 적 가난했던 기억으로 인한 저장 강박, 나에 대한 보상심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나 또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해 못한 사람들 역시 그때 그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알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