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인터내셔널의 레인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된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에서 '예술'로 번역된 Art는 당시 지금과 같은 뜻이 아니라 그리스어로 테크네(tekhne),'즉 기술', '기법'을 뜻하는 단어였다. 시간이 흘러 테크네가 아르스(ars)로 바뀌고, 오늘날 '예술'의 뜻을 가진 art라는 단어로 확장되었다.
요즘 현대미술을 보면 art라는 단어가 기술이라는 개념의 단어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올라퍼 엘리아슨이 빛과 기계적 장치를 이용해 만든 인공자연이라던지, 아예 기계공학을 전공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에브리웨어)의 작업들이 예가 되지 않을까.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새로운 차원의 경험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신기하고, 놀랍고, 즐겁다. 그런 측면에서 꼭, 직접 경험하고 싶은 설치미술작품 하나.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 레인룸
(출처: 랜덤 인터내셔널 공식 홈페이지)
랜덤 인터내셔널은 런던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적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 아티스트 그룹으로 약 20명의 아티스트가 소속돼 있다.
홈페이지를 보면 기술을 활용한 신박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게 Rainroom 작업이다. 2012년 영국 바비칸 센터에서 최초로 전시된 Rainroom은 빗 속을 지나며 하나도 젖지 않는 신박한 경험을 선사한다.
빗소리와 비 냄새를 듣고 보며 비 사이를 걷는 느낌은 오감을 짜릿하게 자극하지 않을까. 비 오는 날, 그리고 그 날의 냄새를 좋아하지만 젖는 수고를 감당하고 싶진 않은 나 같은 게으름뱅이 낭만주의자(!)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냈으니.
3d 추적 카메라, 맞춤 소프트웨어 등을 통해 지나는 사람을 감지하고, 그 부분에만 비를 내리지 않게 하는 동작원리는 기술력과 창의력, 예술적 감각의 집합 그 자체다. 이 레인룸은 바비칸 센터의 성공적인 전시 이후 뉴욕 모마, 상하이 Yuz M, LACMA(현대차가 후원하는 '현대 프로젝트였다고, 브라보 관련기사) 등에서 전시되었고, LACMA 지척에 사는 친구가 말하길 "애고 어른이고 신기해서 난리가 났다"라고 한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권위에 대한 무의식이 그들을 가장 좋은 감상자로 만들 때가 있는데, 이런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아트는 어른도 아이처럼 만드는 마력이 있다.
영상으로 빗소리와 함께 감상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