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기 전에는 종종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연인이 있을 때도 있었고, 없을 때도 있었지만 그 시절은 연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혼자인 느낌이어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곧잘 혼자 보곤 했다. 그리고 마침 동네에 영화관이 생겼었다. 혼자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멋진 하루>. 스모키 화장을 짙게하고 시종일관 심통난 표정을 유지하는 전도연과 칠렐레 팔렐레 눈치 없고 철 없는 놈팽이로 나오는 하정우. 줄거리는 이렇다. 전도연과 하정우는 과거 연인사이. 둘이 연인일 때 하정우가 전도연한테 빌린 돈을 헤어지고 한참 후, 전도연의 인생이 이렇게 저렇게 꼬였을 때 다시 돌려받으려 나타난다. "돈 내놔". 물론 놈팽이는 돈이 없고, 그 돈을 다시 꾸러 여기저기 전도연과 돌아다니는 이야기. 그런 이상한 하루.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루어지는 단계에서 발단과 전개만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정우의 대사때문이다. "니가 상처 같은 거 받아 본 적 있어? 알기는 아니?"라는 날선 말에 영화 내내 헤헤 실없이 웃던 하정우는,
"그래, 니 말마따나 내가 무슨 상처를 받아봤겠냐. 근데 나도 좀 아팠었어.
니가 헤어지자고 한 후에 말이야.
니 마지막 얼굴이 계속 안 잊혀지는 거야. 이상하더라구. 내가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 니 표정이 무지 행복해 보였어.
나랑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도 행복한 표정이라니.
그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내가 조금 아팠지"
나는 이 장면에서 엉엉 울었다. 마침 평일 오후였고, 가뜩이나 인기없는 영화라 그 상영관에 관객은 나 하나뿐이었다. 지금은 왜 울었는지도, 어떤 감정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그냥 울 핑계를 찾은거겠지.
이제는 동네에 있던 그 작은 영화관도 사라졌고, 날 그렇게 울고 싶게 만드는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