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과 조그만 쥐

by 리베라따


초등 저학년 때, 내 할 일은 감 다래끼를 비우는 거였다. 감 다래끼는 주둥이가 좁고 바닥이 넓은 큰 바구니나 망태처럼 생겼다. 아버지는 여기에 줄을 매달아 4~5미터 되는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땄다.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서 부러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뭇가지 위에 비스듬히 기대고서 하나, 둘, 감을 따서 감 다래끼에 넣었다. 가득 차면 아버지는 천천히 줄을 내렸다. 나는 얼른 감 다래끼 안에 있는 감을 바닥에 쏟았다. 아버지는 감 다래끼가 다 비워지면 줄을 감나무 위로 올렸다. 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감 다래끼 비우는 일만 했다. 때론 한눈을 팔아 감 다래끼가 내려오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제대로 도우미 구실을 못 하는 내게 화를 내지도 못하고 감나무 위에서 말했다.

“아가, 뭐더냐? 날 저물기 전에 감을 다 따야 하는데. 응!”


낮에 딴 감이 마루에 가득했다. 곶감은 무르지 않고 단단하며 큰 감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버지는 칼날 끝으로 감꼭지를 땄다. 감 깎는 일은 가을밤에 엄마가 주로 했다. 집안에 둘러앉아 동네 아줌마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새벽까지 감을 깎았다. 왼손으로 감을 잡고 천천히 돌리면 오른손에 쥔 칼이 감을 깔끔하게 깎아냈다. 얼마나 많은 감을 깎았는지 엄마의 손과 옷은 감물로 새까맣다. 아무리 비누로 문질러도 감물은 며칠 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새벽까지 깎았던 감은 크기가 비슷한 것끼리 모아서 싸리나무에 10개씩 꿰었다. 자연건조 시키기 위해 칡을 반으로 갈라 처마 밑에 두 줄로 길게 늘어뜨려 아래부터 싸리에 꿴 감을 매달았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좋은 곳에서 말려야 곶감 색깔도 예쁘고 곰팡이가 슬지 않았다. 학교 가기 전까지 싸리에 꿴 감을 매달 때, 들어 주는 것도 내 일이었다. 처마 밑이 가까워지면 아버지 혼자 감을 달 수가 없었다. 힘이 들지 않은 일을 내가 해야 하는 거라고 정하진 않았어도 집안 식구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달아야 할 감은 많은데 학교는 가야하고.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지 아버지는 칡을 다시 찢으며 감을 달기 시작했다. 참다가 더 기다릴 수 없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는 언제 학교에 가요?”

그제야 시계를 본 아버지는 손짓했다. 학교에 가라고.


깎은 감이 말라갔다. 학교를 오가며 하나씩 빼 먹었다. 홍시와는 다르게 꼬들꼬들한 식감이 자꾸 곶감을 생각나게 했다. 10개씩 꿴 감이 서너 개 남았을 때는 아예 다 빼서 싸리나무를 아궁이에 태워버렸다. 아버지는 알면서도 모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이 다 마르면 10개씩 꿰어있는 감을 하나씩 손질해서 접어야 한다. 곶감을 접는다는 것은 감꼭지 부분과 밑부분을 안쪽으로 밀어 넣어 감이 둥그스름하면서 반듯하게 만든 후 감 10개를 차곡차곡 한쪽으로 밀어 놓는 일이다. 그리고 칼로 싸리나무의 양쪽 끝을 국화꽃처럼 만들어 나무를 자른다.

곶감을 접으러 온 동네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전주 양반, 집안에 쥐새끼가 있나 봐요. 이상하게 곶감이 9개만 있는 게 많단 말이요. 하하하!”

아버지는 입꼬리가 올라간 채 웃으며 말했다.

“거, 조그만 쥐도 먹고 살게 두시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