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장딴지까지 닿을 정도로 내렸다. 발이 푹푹 빠져 마당을 나가기 어려웠다. 날이 무척 춥다고 하는 소한이다. 화롯불에 손을 째며 눈꼽재기창으로 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이 할아버지 기일이다. 막둥이는 목기를 닦고, 넷째와 다섯째는 사당을 치우거라. 점심나절엔 할아버지 산소에 쌓인 눈을 치우고 오너라. 산소 가는 길도.”
넷째 오빠가 사당에 있던 목기를 꺼내 왔다. 보자기로 덮은 소쿠리 안에 거미줄이 있고, 군데군데 하루살이가 걸려있었다. 목기에 앉은 먼지가 뿌옇다. 다섯째 오빠가 행주를 빨아서 나에게 주었다. 오빠는 방바닥에 나와 있는 촛대를 닦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목기에 쌓인 먼지를 닦고, 두 번째는 목기 전체를 꼼꼼하게 닦아. 마지막은 목기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잘할 수 있지?”
두 오빠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걸레를 들고 사당으로 갔다.
나는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목기를 모두 꺼냈다. 목기는 나무 무늿결이 살아있다. 옻칠해서 약간 붉은 빛이 나는 검붉은색이다. 과일이나 음식을 담는 큰 목기 접시는 한 손으로 들 수 없었다. 바닥에 놓고 접시 부분을 닦은 다음 다리 부분을 닦았다. 큰 목기 접시는 맨 아래, 중간 접시 두 개를 그 위에 올리고, 작은 접시 두 개를 잘 포개서 올렸다. 5층이 됐다. 그 위에술잔 받침을 놓은 다음, 술잔을 올렸다. 목기 탑이 완성되었다. 옆에다 또 탑을 쌓았다. 세 번째 탑을 쌓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육일아! 목기 쏟아진다.”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머지 탑들도 목기들이 데굴데굴 굴러 아랫목, 윗목, 방문 앞까지 굴러갔다. 아버지 눈치를 보며 목기를 살폈다. 맨 꼭대기에 있던 술잔과 술잔 받침이 쪼개졌다. 슬그머니 쪼개진 술잔을 들고 안방을 나오려고 일어섰다.
“어디가? 그거 버리게?”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요, 풀로 붙여보려고요.”
불쑥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됐다. 남은 목기마저 닦아라.”
아버지가 화를 안 내니까 눈치가 보이던 마음이 싹 풀어졌다.
아버지 말대로 탕 그릇 목기 종류가 남았다. 장구통같이 생긴 탕 그릇과 나물 그릇, 식혜 그릇을 열심히 닦았다. 신이 나서 ‘우리 할머니’ 동요를 흥얼거렸다.
“할머니 머리엔 눈이 왔어요.
벌써 벌써 하얗게 눈이 왔어요.
그래도 나는나는 제일 좋아요.
우리우리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
밖에서 노래를 듣고 있던 아랫집 할머니가 말했다.
“야, 육일아, 너그 아버지 머리에 눈이 왔어야!
노래를 다시 불러야 쓰겄다. 아버지로 바꿔서.
아버지 머리엔 눈이 왔어요. 하하하!”
할머니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웃었다. 나는 하나도 안 웃기는데. 할머니 놀림을 무시하고 마른행주로 목기의 물기를 닦았다. 목기를 소쿠리에 담아 윗목에 밀어 넣고 사당으로 갔다. 오빠들은 사당 마루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끝냈다.
부엌에서는 전을 부치고 있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호박전과 고구마전을 들고 방에 들어갔다. 두 오빠는 손과 귀가 빨갰다. 추운 날에 찬물에 걸레를 빨고, 사당 치우느라 힘들었나 보다. 콧잔등까지 빨갛다.
“오빠, 추웠지? 고구마전이 따뜻해.”
젓가락에 고구마전을 꽂아 하나씩 건넸다. 오빠들 코와 귀, 손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두 오빠는 당그래와 싸리비를 챙겼다. 나는 털 장화를 신고 장갑을 꼈다. 부엌으로 가 아궁이의 재를 치울 때 쓰는 잿고무래를 챙겼다. 막내 오빠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뭐야? 어딜 가려고.”
“그냥 오빠들을 따라다니기만 할게.”
오빠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앞니를 다 드러내고 광대뼈를 올려 웃어 보였다. 윗앞니 두 개가 빠져서 웃겼나 보다. 오빠가 피식거리다 말했다.
“춥다고 징징대거나 업어달라고 하면 안 된다! 약속했다.”
나는 오빠를 향해 여러 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작로는 사람이 걸어 다니고 소달구지가 다녀서 걸어가기 편했다. 할아버지 산소 가는 밭두렁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두 오빠는 당그래를 밀면서 밭두렁을 찾아갔다. 눈을 밀어도, 두 오빠 신발이 눈 속으로 푹푹 빠졌다. 털 장화를 신은 나는 눈에 빠지지 않은 채 할아버지 묘에 도착했다. 비석만 우뚝 서 있고, 봉분 묘는 하얬다.
“와, 봉분이 하얀 찐빵 같다!”
나는 봉분에 있는 눈을 두 손으로 모아 한 입 먹고, 남은 것을 공중에 뿌렸다. 하얀 눈이 사라지기 전에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발자국을 내며 묫자리 전체를 돌아다녔다. 묫자리 중간 부분에 8자가 그려졌다.
오빠는 봉분에 당그래를 올리고 눈을 당겨 아래로 끌어 내렸다. 쌓인 눈이 봉분 아래로 와르르 쏟아졌다. 나는 얼른 봉분으로 기어 올라갔다.
“오빠, 당그래 썰매 태워줘.”
“안 돼, 빨리 눈 치우고 가야지.”
“한 번만 해줘, 응?”
오빠가 당그래를 봉분에 올렸다. 나는 당그래 끝부분에 올라탔다. 오빠가 비스듬히 당그래를 당기자, 썰매를 타는 기분이었다.
“재밌다, 또 해 줘.”
고드름이 있던 봉분 쪽에서, 오빠는 당그래를 직각으로 잡아당겼다. 나도 직각으로 떨어지면서 봉분 아래로 고꾸라졌다. 눈이 목 뒤쪽으로 들어왔다. 차가웠다. 등까지 내려간 눈은 몸 안에서 금방 녹았다. 놀란 오빠는 얼른 나를 일으키고 눈을 털어주었다. 오빠가 말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빨리하자. 곧 추워지겠다.”
오빠 둘이 당그래로 눈을 당기니까 봉분에 있던 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잿고무래를 이용해 오빠들이 밀다가 남겨진 눈을 한쪽으로 치웠다. 막내 오빠가 드문드문 남은 눈을 싸리비로 쓸었다. 하얗기만 했던 할아버지 봉분에 잔디가 보이고, 상석이 드러났다. 할아버지 무덤은 하얀 눈에서 노란색 잔디로 변했다.
두 오빠는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뫼 계절(묘 앞의 절하는 자리)에 나란히 선 다음 할아버지 묘에 절을 했다. 나도 오빠들을 따라 절을 두 번 했다.
“할아버지, 오늘 밤에 우리 집에서 맛있는 음식 많이 드세요.”
인사를 한 후, 나는 잿고무래를 챙겼다. 오빠도 당그래와 싸리비를 챙겼다.
“오빠, 할아버지 혼령은 눈길에 털신을 신고 올까?”
“신식 할아버지면 털 장화? 구식 할아버지면 짚신이나 가죽신? 오빠도 그건 모르겠다.”
넷째 오빠, 나, 막내 오빠는 한 줄로 밭두렁을 걸었다.
나는 작은 잿고무래를 질질 끌며 혼잣말했다.
“눈을 치웠으니까 할아버지 혼령이 무덤에서 쉽게 나오겠지. 할아버지는 제사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곶감을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