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장 여행 (by 기울리아 엔더스)
철저히 필요에 의해 읽게 된 책이다.
평상시 장이 약한 편이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다짐으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장의 세계는 기대 이상으로 놀랍다. 단순히 응아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뇌 다음으로 신경체계가 발달한 기관이고 세로토닌을 비롯한 20여 종의 호르몬을 생산하며 면역세포의 80퍼센트를 관할한다. 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령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릴 경우 예민한 장을 마취시키는 멀미약이 도움되기도 한다. 그동안 다소 경시됐던 장의 중요성과 장을 연구하는 세계의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이 놀라운 책의 저자는 무려 나보다 어린 90년생 여성 의학자다. 심지어 한국에서 2014년에 출간됐으니, 최소 25살 이전에 책을 쓴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재밌을 수밖에 없다. 의학도서라 그저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위트가 넘치는 비유가 가득해 무리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도입부부터 응아 이야기가 나오니 어찌 몰입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변기 위의 바른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실 배변 통로를 직선으로 열기 위해서는 좌변기가 아닌 푸세식 화장실처럼 앉아서 싸야 한단다. 괜히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그런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좌변기 위에서 품위를 지키고 싶다면, 좌변기 앞에 작은 받침대를 두고 발을 올려놓은 뒤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이는 자세를 취하면 된다. 그러면 배변 통로가 일직선으로 열린다.
불내증, 과민증, 변비, 설사 등 장트라볼타인 분들에게 추천. 행동의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책을 읽은 뒤 작은 변화들이 몇 가지 생길 것 같다. 일단은 약국에서 가서 프로바이오틱스부터 사는 것으로.
덧. 이번에 적어둔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은 지식적으로 두고두고 새겨둬야 할 내용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
100조 마리, 총 2킬로그램 분량 미생물들의 보금자리, 면역세포의 80퍼센트를 관할하는 곳.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을 비롯해 20여 종의 호르몬을 생산하며, 뇌 다음으로 신경체계가 발달한 기관. 바로 장이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우울증, 알레르기, 과체중 등 온갖 몸과 마음의 병이 뒤따를 만큼 장은 고도로 복잡 미묘한 기관이다. (뒤표지)
올리브유가 동맥경화증, 세포 스트레스, 알츠하이머, 그리고 (황반변성) 같은 눈병을 예방하 수 있다는 연구결과 들이 많다. 또한 올리브유는 류머티스 관절염 같은 염증질환에 좋고, 특히 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지방 덩어리를 걱정하는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올리브유에는 달갑지 않은 지방 덩어리에 맞서는 잠재된 힘이 있다. 올리브유는 남는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바꾸는 지방산 합성효소의 활동을 억제한다. 올리브유는 우리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장에 사는 좋은 박테리아들에게도 유익하다. 좋은 올리브유는 당연히 가격도 더 비싸다. 하지만 맛이 신선하고 풍부하며 기름지거나 느끼하지 않다. 그리고 탄닌이 함유돼 있어 삼킬 때 까끌까끌한 느낌이 든다. (p.60)
삶의 모든 영역이 그렇듯 식료품 산업도 계속 변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좋은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나쁜 효과를 내기도 한다. 가령 염장법은 한때 부패한 육류로 인한 식중독을 막아주는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수백 년간 고기와 소시지를 소금에 절여 저장했다. 고기를 소금에 절이면 빛나는 붉은색을 띤다. 그래서 햄, 살라미, 스팸, 소시지 등을 구우면 생고기를 구웠을 때처럼 회색이 되지 않고 적갈색이 된다. 그런데 1980년부터 독일에서 건강을 위해 소금의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기 시작했다. 소시지류는 이제 1킬로그램당 소금 100밀리그램 이상 함유할 수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독일인의 위암 발병률이 현저히 줄었다. 말하자면 한때 추앙받던 새로운 변화를 다시 변화시킴으로써 많은 것을 개선했다. (p.72)
인간은 복합적인 뇌를 가진 것에 자부심이 매우 높다. 헌법, 철학, 물리학, 종교 등에 대한 숙고는 대단한 능력이고 매우 합리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일을 해내는 우리의 뇌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감탄이 도를 넘어 마침내 우리는 인생을 송두리째 뇌에 맡기게 됐다. 우리는 편안함, 기쁨, 만족감 등이 뇌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불안감, 두려움, 우울감 등은 두개골 안에 있는 컴퓨터가 고장 났기 때문에 느껴지는 결과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워한다. 철학적 사고나 물리학 연구는 예나 지금이나 뇌가 담당하는 분야로 통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는 뇌 그 이상이다.
이런 가르침을 전해주는 주인공이 하필이면 갈색 덩어리를 밖으로 내보내고 다양한 트럼펫 소리를 들려주는 장이다. 현재 장에 관한 여러 연구들이 사고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중략) 장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경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굉장히 다른 종류의 신경을 갖고 있다. 장은 다양한 신경전달물질, 신경 절연물질, 신경 회로망 부대를 갖추고 있다. 장 이외에 이렇게 큰 다양성을 가진 장기는 뇌 하나뿐이다. 그래서 장의 신경망을 ‘장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략) 우리의 자아는 머리와 배로 구성된다. 언어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바야흐로 실험실에서도 점점 더 이것이 증명되고 있다. (p.130-131)
서구 산업 선진국 아기의 3분의 1 이상이 우아하게 제왕절개로 태어난다. 산도를 따라 좁은 틈을 비집고 나오지 않고, 분만 중에 생길 수 있는 ‘회음부 열상’ 같은 달갑지 않은 부작용이나 ‘태반 만출’도 없다. 언뜻 듣기에 아주 깔끔한 분만처럼 들린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기는 삶의 첫 순간에 여러 낯선 사람들의 피부와 접촉한다. 엄마의 특효 박테리아에 감싸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기의 장은 어떤 식으로든 여러 낯선 피부에서 박테리아들을 모아야 한다. (중략) 피부는 산도처럼 엄격히 보호되지 않고 외부 세계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 경우 피부에 모여 있던 미생물들이 그대로 아기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중략) 병원에서 주로 발견되는 균에 감염되는 신생아들 중 4분의 3이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이다. (p.172)
플라스틱 도마를 쓰자. 우선 씻기 편하고, 나무 도마에 비해 박테리아들이 틈에 숨어 살아남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p.213)
후각은 오감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감각이다. 미각, 청각, 시각, 촉각과 달리 후각은 통제 없이 곧장 뇌로 전달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모든 감각으로 꿈을 꿀 수 있지만 후각만은 아니다. 꿈에는 냄새가 없다. (p.230)
프로바이오틱스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증상이 설사다. 장염이나 항생제 복용으로 인한 설사라면, 약국에서 구입한 다양한 박테리아로 설사를 가라앉힐 수 있는데, 평균 하루 정도면 끝나게 해준다. 게다가 다른 지사제와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특히 좋다. 궤양 대장염이나 과민성 장증후군 같은 장 질환의 경우에도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 설사와 염증이 가라앉는다. (p.265)
바야흐로 우리는 좋은 박테리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찾아냈다. 달래과 식물들, 국화과 식물들, 혹은 저항력이 강해서 소화되지 않고 식이섬유소 구실을 하는 음식들. 파나 아스파라거스뿐 아니라 양파와 마늘도 달래과 식물에 속한다. 국화과 식물에는 치커리 외에 우엉, 돼지감자, 아티초크 등이 있다.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