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 음식

할머니표 학독 김치

by 달잠

우리 집은 다섯 식구다. 그래서 식사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한 두 시간 열심히 식사 준비를 해서 상을 차려 놓으면 순식간에 다 먹고 식탁 위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음식의 잔해들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아이들이 음식을 가리지 않고 다들 잘 먹어서 뿌듯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전쟁터에 발을 들여 놓기가 겁이 나서 주방에서 잠시 달그락 거리며 1차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상황이 일단락된 것 같으면 식탁에 앉아 조용히 혼자만의 2차전을 치르기도 한다. 밖에 나가 사먹을 때도 있고 밀키트도 시키고 인스턴트로 때우기도 하지만 식사의 대부분은 내가 애를 써야 하는 집밥 차림이다. 아이들 방학 때가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방학은 대체 언제 끝나나 달력을 들춰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하루에 절반이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에 소모가 된다. 하~ 도망가고 싶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잊지 못할 나만의 집밥이 있다. 그건 바로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할머니표 집밥이다. 음식의 맛이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 냄새, 맛을 보며 신기해하고 행복해하던 나의 미소가 떠오른다. 명절 때와는 달리 할머니의 손맛은 재료가 거의 없을 때 마법을 부린다. 여름 방학 때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광주에서 온 손주들을 위해 점심을 뚝딱 만들어 주시던 생각이 난다. 고기도 없고 변변한 재료들도, 갖가지 조미료나 양념도 없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내 입맛을 붙들어 맬 신기한 요리가 탄생한다.


요리에 쓸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오래된 기와집 뒤편에 있는 작은 텃밭으로 간다. 정말 작은 땅이지만 갖가지 채소들이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있다. 그곳에서 부추, 쪽파, 고추, 얼갈이, 상추 등의 채소를 한 움큼씩 뽑아 온다. 재료들을 대충 씻어서 마당에 있는 작은 평상에 놓는다. 오늘의 요리는 얼갈이 김치다. 맛있는 김치를 위해 한 몫을 단단히 해줄 주인공은 학독이다. 절구통 같이 생겼지만 절구통보다는 넓적하고 얕으며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돌그릇 같은 거다. 학독에 마늘과 홍고추를 넣고 손바닥만한 반질반질한 돌로 무자비하게 박박 갈아준다. 울통불퉁한 학독 내부에서 둥근 돌이 믹서기가 되어 재료를 갈고 나면 할머니표 젓갈과 소금 고춧가루 등을 넣어 간을 맞춘다. 씻어 놓은 채소들을 대충 썰어 양념과 함께 버무리면 끝. 들어가는 재료도 요리의 과정도 크게 특별할 건 없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과 함께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다. 곱게 갈리지 않은 홍고추가 간혹 씹히지만 맵지 않고 달달하다. 아삭한 김치를 씹고 있으면 입안 가득히 미소가 번진다. 고기나 생선도 없는 밥상위에 얼갈이 김치와 밑반찬 두어 개만 가지고도 점심 식사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마법이다. 저렇게 작고 거친 고목나무 같은 할머니의 손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을까 신기해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학독에서 만들어낸 음식을 맛 볼 수가 없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특별할 것 없는 고구마 줄기 넣은 갈치조림도 먹고 싶다. 나는 도저히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잊지 않기 위해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맛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윗 그림은 gemini 이미지 사용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