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있는 자 마음껏 아름다우라

2022.10

by 강선미


시곗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악쓰며 시간아 제발 멈춰줘 애원했던 월초가 까마득하다 어느새 또 한 달이 기어코 흘렀구나 한다


절절한 마음을 담아 A 회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지원 동기를 쓴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B 회사의 지원 동기를 썼던 일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자주 속이는 사람이 내가 되는 일

처참히 죽었다가 눈뜨면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연습을 반복한 나날


이렇게 며칠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잠들지 못한 밤들과 찾아온 잠이라면 마지않고 환영하여 기절하듯 현실을 도피한 순간들⋯


예견된 후회가 나를 쫓아오는 듯하여 잡히지 않기 위해선 달려야만 했던 한 달이었다 어느 정도 따돌리는 데 성공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는 이유는 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버리는 게 감정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내 이름 위에 kreuzen 표시를 그을 것 같아 날 불안케하던 취준 일정들이 매일을 이루는 일상이었기에 습득해야 할 지식의 양에 깔리고 쫓아오는 시간에 짓눌리기 바빴다 누구나 붙잡은 동아줄이 썩지 않은 그것이길 바라듯 나 또한 희망을 품고 온 힘을 다해 동아줄에 매달려보겠다고 애썼다 썩은 줄 같으면 다른 줄로 폴짝. 타잔처럼 근근이 목숨을 연명하는 중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 정도의 버거움은 언제든 버틸 수 있다 돌아갈 곳 없는 상태는 아무래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 러시안룰렛은 밑져야 본전이다 발자국마다 벼랑이래도 눈 깜짝 않고 다음 발을 내디딜 것. 총알이 남아있는 한 나는 용감을 빚낼 수 있다


인재상은 뚫어져라 본다고 깨닫게 되는 것도 없고 딱히 유의미한 정보를 주지도 않지만 인적성 시험을 보거나 면접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보고 들어가야만 한다 이것들은 보다 보면 그렇게 당연한 말일 수 없다 소통 잘하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야망 있고 배우려고 하는 인재상에 맞추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면 그만이나 소심한 취준생은 이런 사소한 자기보고식 검사에서도 끝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어쩔 수 없이 날 증명하려고 또, 또 애쓰게 되는 것이다


봐봐요 나 이런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면 생이 가끔 아뜩하고 안쓰럽다


나 진짜 열심히 살았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데. 4년간 끊임없이 날 증명하려고 노력해왔고, 막 학기가 아닌 나와 막 학기의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데 어떤 새로운 나를 온 마음을 다해 빚는 것 같은 이 노력들이 가끔은 소름 끼치도록 거짓된 것처럼 느껴져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죄책감은 로그 스케일로 야위어가서 순식간에 별거 아닌 비중의 잡생각으로 태깅 되었지만.


취준생이라면 응당, 교묘히 불행에 익숙해지고 실패엔 의연하게 고통엔 무디게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의 강인한 멘탈을 가질 것


기꺼이 내 삶에 무책임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인내를 조금 더 배우기로 한다


독 있는 자 마음껏 아름다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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