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입사 예정일이 3월 13일이라 의도치 않게 긴 방학이 생겼다
왠지 가야 할 것 같아서 해외여행 한 번 갔다 오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랑 약속 잡고 설이라고 조부모님 댁 다녀오니까 어째 한 달이 지나버렸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건 역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내지 공백을 남기는 것 같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나다운 게 뭔지, 내 취향은 뭔지 알아가는 한 해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 나를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확실히 설명되면 좋겠는데,
어정쩡하거나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라 확고한 줏대를 가진, 적어도 품위는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바라는 모습이 있냐고 하면 분명히 존재하긴 하는데 흉내는 언제나 티가 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우선적으로는 집중해야 할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해서 해야 할 것들에 정성을 들이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은 뭔지 호기심의 방향에 관심을 가져볼까 한다
결국 나다움과 정체성은 취향에서부터 드러나니까
'상대에게 빠지고 열광할 수 있는 것도 엄연한 능력이다. 그게 부족한 건 자랑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감을 넘어서 위로까지 받았을 만큼 명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나는 좋아하는 게 많고 관심사가 다양한 게 단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능력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사랑은 그냥 인간이 생각한 최고의 것에다가 붙인 이름이고, 난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까 가능한 한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진 붙잡고 싶다
"사람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마지막 걸음을 못 내디디게 뒤로 불러들이는 것은 유년 시절 좋아한 것들의 기억"일 테니
오히려 내가 아직 무언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을 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더욱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 은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느꼈지만, 열정은 심지와 같기에 언젠가는 다 타버려서 불을 아무리 붙이려야 붙일 수 없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 내가 쥐고 있을 법한 걸 남기는 게 '청춘'이라는 수명 짧은 시절의 명칭이 으레 짊어진 의무가 아닐까?
내일을 바라보며 달리는 삶을 살다가 당장 오늘을 살아보라는 시간이 주어지니까 미뤄둔 상념이 고개를 비집는다
새로움 없이 매일이 비슷할 것이라 예상되는 무료할 미래가 와버리기 전 당장에 좋아하는 것들과 내 삶을 연결 짓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날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주어져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 돈 많은 백수는 적어도 내 장래희망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멈춰있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인지라 몇 번의 사계절을 더 보낸대도 제자리에 멈춰있을 것 같은 사람과의 대화는 유쾌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제껏 성공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온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앞으로도 야망의 크기만큼은 노력해야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름 모를 부재를 메우고 취향과 자아를 찾는 노력이 내가 가질 모든 하루들을 빛내는 과정에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