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실 그건 어떤 파랑도 아니었다

2023.03

by 강선미


누군가의 삶을 알게 된다는 건 읽어본 적 없는 새 책을 처음 펼칠 때의 두근거림을 닮았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처럼,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저마다 한 권의 책 같은 사유의 깊이를 지닌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나의 3월은 다시 읽고 싶은 책, 다시 펼쳐 보고 싶은 페이지들로 가득하다.



나에게 3월은 '아직 새해'라며, 신년의 들뜸을 주장할 수 있는 끝자락의 끝자락, 그러니까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달처럼 느껴진다. 매년 그래왔다. 작심n일로 끝날지라도 의도적으로 정신에 환기를 시키고, 새로움만이 가지고 있는 싱그럽고 풋풋한 에너지에 기대볼까 하며 은근한 기대를 품고 목표를 세우는 개인적 마지노선. 여태껏 1월 1일 신정에 한 번, 음력 1월 1일 구정에 한 번, 개강을 하는 3월 2일을 마지막으로 총 세 번 새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을 먹곤 해왔다. 올해는 개강과 무관한 사람이 되긴 했지만, 입사라는 이벤트가 어떤 방향으로든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주리란 기대가 있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가기 위해서 부러 조금은 가볍고 더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 보려 했다. 이 새로운 페르소나의 날갯짓이 불러올 결과는 아마 한참 후에야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4월의 내 위치가 입사 전과는 다른 곳이라는 점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전과는 달라진 시선으로 사람을 보고, 사회를 담는 내가 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저마다의 회상이 다를지 모른다. 다만 이미 느낀 감정을 편집하거나 손봐서 기억하고 싶은 대로 남기려 해도 나를 속이는 게 불가능하듯 어떤 감상은 시간에 영원히 달라붙어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함께한다. 기억에는 내 몫을 뺀 나머지가 존재하는 듯하다. 서툰 호흡, 어색한 대화였지만 새로운 시작이 으레 가지는 고양된 에너지와 설렘이라는 필터가 어찌할 도리 없이 내 감상 위에 씌워져 미화를 시켰을 수도 있다. 아무튼, '시작'이라는 단어에 의미 부여하길 좋아하는 사회 초년생은 입사의 '시작'을 SVP로 기억할 거고 그 시작이 더없이 푸르렀기에 행복했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내뱉는 그 어떤 단어도 애정 섞인 감사로 읽혔으면 한다.




초등학생 때의 몇 남아 있지 않은 기억 중엔, 전학을 간 첫날에 해야 할 자기소개 시간이 너무도 두려워서 잠에 들지 못했던 어떤 밤의 서늘함이 있다. 아주 흐린 기억에서조차 항상 애정 어린 마음을 받아오길 바라왔던 나는 여전히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과 이왕이면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길 바라는 욕심을 부린다. 맺어온 인간관계의 폭과 넓이와는 무관하게 지금의 나와 타임라인의 구간을 맞닿고 있는 인연에 느끼는 애틋함이나 감수성이 남들보다 아주 조금은 더 풍부한 성향 탓이다. 살면서 귀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만나 도움받아온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 만날 누군가와도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 건 그 때문이다. 사람 일 아무도 모르는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시적 우연이 거시적 필연이란 낭만을 지키고 싶어 애를 쓰고 있다. 마음을 사탕처럼 나눠주며 누군가는 그걸 깨트리고 누군가는 그걸 품더란 걸 알게 됐다.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을 다치듯 마음을 많이 사용한다는 건 마음을 많이 다칠 리스크를 어느 정도는 안고 가는 사람이라는걸, 다른 사람들은 아니더래도 내 주변 사람들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연수 기간 중 제일 마음 편했던 날은 첫날인데, 눈치 볼 것 없이 날 보여주자는 마음뿐이었기에 가장 나다울 수 있던 날이었던 듯싶다. 둘째 날부터 퇴소 날까지 룸메이트에게 자기 전 빠짐없이 했던 질문이 '나 오늘 실수한 거 없지?'였다. 내가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어서 나름 무지 애썼는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 모든 시간 동안 함께 한 동기들이 느낀 바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잘 친해지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과 방향을 몰라 서툴렀을 순 있으나 행운처럼 나를 다그치거나 재촉하는 사람 없이 속도를 맞춰 함께해 주는 일타쌍P 동기님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장난 식으로 말했지만 오래 붙잡고 싶은 사람들이란 말은 늘 진심이었다.




연수 자체에서 기억에 남는 교육내용이랄 건 별로 없었고, 함께 입사하는 동기들과 서로의 타임라인의 구간이 맞닿은 순간들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밀도 있게 공유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회사의 경영이념과 철학에 대해 배우며 물론 내가 다닐 회사가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차가운 기업이 아닌 사회를 더 가치있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따스한 기업이란 게 느껴져 뿌듯했으나, 그것보다는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인재제일'을 추구하는데, 그렇게 뽑힌 사람들과 하는 대화들에서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일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단 게 수확이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서 달려왔다는 공통점 하나로 각자의 인생의 길목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인데 여태까지의 내 주변 사람들보다 더 동질감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해온 활동이 겹친다거나 야망의 크기가 비슷하다거나, 유사한 실패를 겪고 똑같이 좌절했으나 결국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온 사람들을 보며, '나의 동기들은 저마다의 삶으로 각자의 대답을 해왔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해졌다. 누구 하나 어떻게 들어왔지라는 의문이 든다거나 왜 이곳이어야 하는지 헷갈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저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곳에 붙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온 스스로의 오만이 많이 부끄러웠고 어떤 집단에서든 자리를 헷갈린 건 아닐까 불안해하고 외로워했던 내가 소속되고 싶다고 생각한 집단도 처음이었다. 타인에 대해서 높은 기준을 들이밀며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지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여태껏 나의 삶의 양상이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장부인 것처럼 앞으로의 시간들과 환경들도 내가 꾸려나가기 나름일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됐다. 아직 입사가 실감 나지도 않기에 거창한 포부랄 것도 없고,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은 그저 막연할 따름이지만 그저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가 어느덧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어느 파편에서도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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