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로, 자몽살구클럽

죽는 건 하루만. 진짜 딱 하루만 미뤄야겠다.

by 강선미

극히 개인적인 선호로 작가가 쓴 ‘첫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자가복제가 없으니 신선하고, 자전적인 상처를 전시하듯 내비추는 표현들이 시중의 어떤 책들보다 날것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하지만 자몽살구클럽은 전반적인 전개방식이 청소년소설의 typical 그 자체였고 현학적인 문체로도 등장인물이 평면적 약자가 되는걸 막지 못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문제라기보단 구성부터 디테일이 부족했겠지. 상처‘받을만한’ 사람에 대해 설명하고 왕왕 상처주기. 이유없는 어른들의 가해에 지쳐 자살을 결심하는 소녀들, 전개가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


불행은 왜 약자의 몫인지? 행동하는 약자는 폭력을 순응하는 약자보다 악한게 되어버린 페이지를 뒤로하고 가치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면 전부인지? 200페이지가 전부인 책에서 185페이지까지 감정을 차곡차곡 쌓은 후 한페이지로 던져버리면 내 손에 남은게 여운이 될 수 있는건지? 마침표 이후에 물음표가 많아지는 책이다.


임솔아의 최선의 삶, 김사과의 미나가 단순히 새드엔딩이었기에 여운이 남았던 건 아닐테다.


모두가 자기 손에 박힌 유리조각이 제일 아프대도 아픔에 면역이 없을 땐 더 아파할수도 있는 것이다. 미성년자를 벗어난 나이에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기억의 테두리를 더듬으며 그때의 상처를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섬세한 문장들로 누군가의 한 시절 문을 닫을 수 있게끔 돕는 성장소설들이 있다. 한로로의 가사들이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듯 소설로도 치유받을 수 있는 그런 경험을 기대했다.


미성숙하기에 더 아픈 성장기가 고작 소재로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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