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샛노란 노랑과 점잖고 어두운 회색의 조합을 좋아한다. 따지고 보면 의외라 어쩐지 산뜻하게도 느껴지는 이 둘의 조화 가운데엔 일렁이다 눌러진, 눌러지고도 채 밝은 어떤 평정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도 같아 가만히 바라보며 길을 잃어도 보는 조합 너머로 왠지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가 아득히 사라지며 맑아지는 것 같다. 종종 옷으로도 입고, 집안 곳곳에 심어 두기도 하는 이 둘이, 이번 봄 더 눈에 띄고 마음을 두드림을 느낀다.
아침 찬 공기가 걷히는 열시 즈음엔 아이와 마당을 거닐며 가지 끝에 달린 동그란 봉오리들을 관찰한다. 새 잎이 돋을 것과 꽃이 필 것들을 살피고 지저귀는 새들의 위치를 가늠하다 보면, 아이는 놀랄 말들을 터뜨린다.
“엄마! 꼭 풍선 같네, 저 봉오리들은! 후- 후- 불면 커지는 풍선처럼 잎도 나오고 꽃도 나오니까.”
“이 잎사귀는 폭신폭신해서 아기 곰이 덮고 자.”
아이는 내달리다 돌 길 위에서는 조심히 균형을 잡기도 하고, 더러는 땅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에게서 잠시 눈을 돌리니 아직은 삭막한, 돌빛의 땅 위에 봄 기운 만연한 노란 햇빛이 알랑거리고 있다. 나는 그 따스함이 좋아 넉넉히 바라봤다. 약하지만 강렬한, 두려움 없는 다정함이 느껴졌다. 회색에 닿은 노랑! 나는 곧 그 빛이 내 아이와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아이가 주는 위로는 참말 언제나 다정하고 귀엽다. 얼굴 가까이 다가와 작고 도타운 손을 내 어깨에 툭 올려 두고 씨익 웃는 모습이라던가, 제 딴에는 정교히 만든 농담을 밝게 웃으며 뿜는 모습, 고개를 오른쪽 왼쪽 까딱거리며 노래 부를 때 등등, 아이는 가까이서 쉴 새 없이 제 빛을 나누고 있다. 더러 내게 안겨올 때 느낄 수 있는 아이의 무게와 온도는 내 안 깊이 밝은 빛을 더욱 비춘다. 나만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거다.
봄의 노랑에 깃든 여름의 무성한 초록과 가을의 깊은 빨강은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완착하지 않은 성숙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반복되는 계절이나,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게 하는 힘 - 그게 봄의 힘일테다. 난 내 아이에게 깃든 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완착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그것들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고,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것들이다. 기다리는 중에도 내게, 제 주변에 비추는 밝고 맑은 힘은 해서 신비가 아닐 수 없다.
봄이 닿은 곳마다 따스함이, 생명이 부푼다. 한국 보다 봄이 늦은 이곳에서, 나는 목련도, 벚꽃도 종종 그립지만, 그리움 너머로 나를 끌어주는 힘을 붙잡는다. 그 힘이 건져낸 나는 건져진 시간 안에서 이야기가 찾고, 또 만들어 간다. 노랑과 회색이 조우한 지금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