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가루

공짜도, 우연도, 마법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by Summer Song

싱크대에서 그릇을 닦고 있는데 오르막 드라이브 웨이로 우편물 트럭 하나가 올라온다. 그르르륵,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들어와서는 탈탈대며 곧 자리에 서는 트럭. 잠시 기다리니 한국에서 온 박스 하나가 집배원 품에 안겨 타박타박 문으로 걸어 온다. 멀리서 온 선물에 반가운 마음이 마중가고, 가벼이 집배원과 인사를 나눈 후 박스를 가까이 안아 든다. 단단히 붙여진 테이프를 가를 연필칼을 찾는다. 늘 두는 곳에 꼭 없는 것 중 하나가 연필칼인듯. 어디있지, 나는 다급히 방을 휘 둘러본다. 찾고나면 이내 기억나는 이전 동선. 아 맞아, 그래서 여기다 뒀지. 드르륵, 빼내어 든 칼을 혹여나 박스 안에 담긴 선물이 상할까, 조심히 움직인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 위로 먼곳의 공기가, 수고가 푹, 터져 나온다.


때는 2021년. 코로나로 실제의 시간보다 더 한참으로 느껴졌던 시간을 견딘 우리는 겨울을 보내며 한국행 티켓을 사고 백신을 맞았다. 그즈음 한국에서는 집 지을 생각으로 사놓은 땅이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놀게 되자 그 땅을 밭으로 일구는 일이 진행되었다. 두 손주와 나눌 것들을 생각하며 힘 들어도 털어내며 분주하셨을 부모님. 주택 생활하다 아파트 생활로 혹여 답답해하지는 않을까 생각하시고 농막까지 설치하셨다. 아이들 좋아하는 여름 채소를 두루 심으시며 바쁘셨던 부모님께 나는 그저 멀리서 몸 조심해 일하시라는 잔소리만했다. 서로의 반경과 행동가짐에 모두들 날카로왔던 그때, 조율되지 않는 원칙들 앞에 실망하고 낙담하기 일쑤였던 계절을 우리 모두가 지나고 있을 그때, 부모님과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그러한 것들 앞에서의 시간 안에 힘을 얻었던것 같다. 빛을 머금은 꽃과 풀, 그리고 나무들.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파도. 높은 곳을 나는 새. 싹을 틔우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작물들의 모습과 수확되기 시작한 몇몇 채소들을 카메라로 담아 나누며 우리는 화면을 통해서가 아닌 같은 공간에서 마주할 서로의 얼굴을, 공기를, 경험을 그리워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덧 아이의 여름 방학 시작날, 우리는 긴 시간을 날아 한국에 도착했다. 격리를 마치고도 코로나 규제 때문에 바깥 활동은 꽤 도전스러웠다. 무더위도 한몫했는데, 땅 위로 쏟아지는 뜨거움에 우리는 가히 혼을 잃곤 했다. 아이들 위해 시작은 하셨지만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밭으로는 도저히 아이들 부르기가 미안하셨는지 한국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아직은 안된다며 바쁘셨던 두 분은 에어컨 달고 튜브 수영장을 구비하고 나서야 아이들의 작은 손을 고이 잡아 그곳으로 이끄셨다. 한적하고 고요한 그곳에서, 아이들은 오랜만에 마음껏 소리쳤고 풀장 안의 물을 반기며 깔깔댔다. 기분이 좋아서 우리는 얼굴 근육이 다 아팠다. 키큰 옥수수 너머 파란 하늘과 쨍쨍 내려 쬐는 햇볕이 보기 좋게 우리를 감싸 안고 있었고, 마음이 활짝 넓어짐을 느꼈다. 그 땅에 필요했던 수고가 열매 맺어 내 눈 앞에 선사한 신선함은 몇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기억되고 감사로 나가게 하는 힘이 된다. 내 아이들이 누린 극진한 친절함. 나는 그 힘을 빌어 그리운 것들을 그리움으로만 남게 하지 않으려 움직인다. 내가 보낼 수 있는 사랑과 수고가 사실은 내게 넘침을, 내게 온 그것들이 풍성했음을 바라보며 새로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칠때도 있다. 속상하고 피곤한 때도 있고. 다만 그 이유가 상황 때문이건, 나 때문이건 기필코 그를 넘어 삶을 살아갈 이유는, 더 나아가 기꺼이 살아낼 수 있는 힘은 내게 온 그 무엇도 공짜가 아니었기 때문일테다.


그해 여름, 부모님께서 거둔 농작물은 상추와 토마토, 가지와 호박, 옥수수 등이었다. 손 안에 잡아들때 느껴지던 자연의 섭리와 부모님의 수고는 각별한 감동이 됐다. 풍족함이 도를 넘어 쉬이 버려지는 많은 것들 앞에 새로운 시선을 갖게된 것도 사실이다. 올 여름 한국에 갔을 때엔, 부모님은 3년차 농부로 식탁을 가득 채워 살고 계셨고, 입에 넣는 모든 것의 출처를 헤아리며 함께한 매 끼니는 내겐 어떤 긍지가 되었다. 아이들과 몇번 함께 찾은 밭에는 옥수수와 수박, 참외와 가지, 쌈 채소와 오이 등이 알음알음 자라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관심을 받는 작물은 다름 아닌 고추였다. 나는 고추 농사가 그렇게 정성이 필요한 일인지를 몰랐다. 빨갛고 매운 음식들이 흔하디 흔한 한국 음식을 생각하면 고추 농사가 힘든건 얄밉기까지한 사실이다. 고추가 앓는 병이며 해충에 대해 알려주시는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태풍 오기전 넘어질까 줄로 매어주고 벌레 먹은 것은 처리하는 수고 모두가, 거기에 수확하고 나서 태양에 말리는 일, 그 후엔 또 그걸 빻는 일까지, 뭐 하나 저절로 되는 것은 없음을 헤아리자니, 마음이 자연히 무거워졌다. 세상에. 세상에 말이다.



박스 날개를 걷자 검은 비닐봉지 안에 밀봉된 고춧가루가 가득이었다. 미국에 돌아오기전, 아이들과 부모님께서 첫 수확한 빨간 고추를 한 방 가득히 두고 고추 꼭지를 땄던 날 생각이 났다. 곱기도 곱던 빨간 고추는 매콤하면서도 찡한, 아주 맛있는 향을 풍겼는데, 나는 그것의 향을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들이키며 부모님 수고에 왠지 숙연해졌다. 마음 조리고 몸 부려 하신 농사의 결과물을 앞에 두고 멀리서 온 사랑을 내 안에 눌러 담았다. 꾹꾹, 단단하게.


오늘 저녁엔, 이 엄청난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칼칼하게 찌개를 끓여야지. 멀리서 온 사랑과 수고를 그릇에 담을려니 마음이 다시 몇해 전 그날처럼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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