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가능한 것들에 대하여
지난 해 이맘때 즈음이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읽기 공부를 시작한 둘째가 소리내어 음절 하나씩, 단어 하나씩, 그리고 의미 있는 문장 하나씩을 읽어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품에 앉아 짧은 책 한권을 읽어 내고 제 잠자리로 폴짝 뛰어 오르며 건너편 침대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누나 이름을 여러차례 부르던 아이는 누나가 대답이 없으니 목소리가 커진다. “누나는 책 읽고 있으면 주변 소리를 잘 못들어.” 일러주니 눈이 초롱해져서 어떻게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속으로 읽는건지 신기해한다. 그 과정을 이해해보려는 눈치다. 나는 그 신기함이 신기했다. 나는 첫째가 설명해주는 읽기 과정을 함께 들으며 둘째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이가 눈이 커져 신기해하는 모양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읽기 걸음마를 떼고 있자니 다른 누군가의 읽기가 그렇게 보인것이다. 아이에게 너도 곧 누나처럼, 엄마처럼, 아빠처럼 읽게 될것이라 일러줬다. 아이는 그 날이, 그 일이 어떻게 이뤄질지를 감히 제 머릿속으로 그리며 얼굴이 밝아졌다. 그날 밤의 미소가 눈에 선하다.
누나가 학교에 가면 놀다가도 시간을 정해 책상에 앉아 읽기 공부를 했다. 때로는 내가 읽고 때로는 아이가 읽고. 서로가 주고 받은 소리의 의미, 함께 채운 시간들. 아이가 좋아하는 블럭으로 함께 읽은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몸으로 표현하고 책 제목을 맞추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작은 손에 연필을 쥐고 가족들 이름을 쓰기도 하고 물감 놀이도 하고. 그렇게 둘이 오손도손 지낸 시간들 위로 아이는 자랐고 아이의 읽기도 꽤 자연스러워졌다. 제 스스로 한권씩 다 읽고 나면 스티커를 주고 열댓권이 모일 때마다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는데, 선물 받을 날이 가까워 오면 책을 한아름 가지고 와서 단박에 선물받고자하는 의욕도 늘 보여줬더랬다.
엊그제는 아이가 책을 제 무릎에 펴두고 한참 조용했다. 보통은 그림을 보는데 가만 보니 아이의 눈이 활자 위를 움직인다. 아, 언제부터?
속으로 읽는 걸 신기해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읽고 있구나 싶었다. 가만히 다가가 “책 읽어?”하고 물었다. “응” 하는데 아이의 눈이 글자를 잡고 있다. 잠시 기다려 아이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일러줬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이제 안으로 다 읽을 줄 아네?”하고. “기억나? 그걸 신기해했던걸?”
자라는데 필요했던 수 많은 것들로부터 독립하며 우리는 우리 또한 자란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들, 가능한 것들에서 잠시 멈춰 치열하게 자라나는 다른 존재를 다정히 보살필 필요가 있음은 다음 세대를 위한 수고라는, 고귀한 명분 외에도 나의 지금과 타인의 지금을 현재 시점에서만 이해하고 판단하지 않을 명철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일테다.
스스로가 대견한 아이의 얼굴에서 읽은 아이의 기쁨 너머, 나는 이렇게 아이의 성장을 되짚은 작은 행사가 나와 아이에게 심었을 어떤 친절의 씨앗에 대해 생각한다. 바깥으로 나오는 행실 이면에 쌓인 수 많은 나이테, 성장의 모양새는 그 누구도 제 스스로 그려낼 수 없고 저절로 생기지도 않는 것이니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때때로의 이런 기념은 유의미하다. 지금 너머를 생각하며 현재를 사는 것. 우리 안에서 가능한 것들이, 우리 바깥으로 나올 행사들의 뿌리가 차곡차곡 단단하고 다정하기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