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무 심기

나무가 이어주는 시간, 나무로 엮이는 시간

by Summer Song

어머님 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코너에 상당한 면적의 땅이 비어 있는데, 그곳 한 가운데, 계절마다 아름다운 단풍나무 하나가 서있다. 둘째 아이가 뱃속에서 크던 중에도, 또 출산 후 어린 두 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종종 그 옆을 지나갈 때에도, 그 아이들이 자라 바쁘게 재잘대며 시끄러울 때도, 나는 그 나무를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 한켠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그 만족감은 나무가 흡사 내 마음 안으로 한 걸음씩 걸어 오듯 찾아왔다가 지긋이 눌러 앉는 평안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말이다, 몇해 전 그 나무 옆을 지나며 뜬금없이 저 나무는 내꺼라고 외쳤다. 당시 아마 네살 정도였던 둘째는 그렇게 나무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견에 자기도 자기 나무를 찾아볼 것이라고 했고, 첫째와 남편은 고맙게도 이런 말도 안되는 외침을 웃으며 용인해줬다. 그 터를 지날 때마다 때로는 내가, 때로는 남편이, 또 때로는 아이들이 말한다, “엄마 나무다!”


보통 널찍한 뜰에 자잘한 덤불 없이 아름드리 자란 나무는 보호수 개념으로 관리되고 있는 나무일 것이다. 한 공간이 나무 한그루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하지만 그 공간을 나무로 특정하고자 했던 첫 의도와 의지를 헤아리다 보면 시간을 꿰어내는 일종의 믿음과 사랑 같은 것들이, 잊혀지고 끊어지지 않고자 하는 어떤 굳은 기백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숭고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래된 나무가 웅장한 공원이나 농장, 고택의 뜰 안에 들어가면 마음에 울림 같은 것이 오는게 아닐까. 익숙한 환경에서 나와 오래된 나무를 보러, 아니, 사실 나무를 보려고 계획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나들이 간 곳에서 만나는 나무들은 나로 하여금 큼직한 호흡을 하게 하고 마음도 확장시켜 준다. 이런 고마움 때문에 나는 나무와 함께 하게 되는 시간이 어느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음 시간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것이 보호수이건 아니건, 어느 공간 안에 나무가 있고 그 나무로 인한 환기로 일종의 경이 같은 것을 느끼고 나면, 나는 그것이 뿌리 내리던 시기 어느 때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 오기까지 걸린 시간을 더듬어 보면서 누리는 숙연함.


며칠 전엔 특별히 남편과 단둘이 공원을 걸었더랬다. 가을 햇살에 더 익어야 할 잎들이 아직 나무 위로 풍성했지만 이미 떨어진 잎들 또한 상당한 땅을 밟고 걸으며 20년 전과, 20년 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세대를 대략 30년이라는 시간으로 이해한다라고 치면 우리가 이야기 나누던 20년이라는 단위의 시간은 그 한 세대를 살아내며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과, 그것에 맞물린 어떤 기대와 준비, 정리와 남겨둠 같은 것을 한꺼번에 의미했다. 세대가 아직 채 다 차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범위가 역동적이면서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쩌면 그 시간 안에 이별하게 될지도 모르는 몇몇 어른들을 생각했고, 아이들의 성장을 어림잡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석양이 고요하게 떨어진 호수를 서로 잠시 바라본다. 20년 뒤, 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 같은 것을 하면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우리를 둘러 선 나무들이 함께 이 시간을 담아내고 있었다.



작년 어느 날 구매해두고 바로 읽지 않았던 책 한권을 꺼내 읽은 그날 밤, 나는 엮인 글 하나에서 나무를 심기 가장 좋은 시기는 이십년 전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지금이라는 중국 속담을 마주했다. 운명이라고 느끼기엔 과장된 면이 있을테다만, 나는 이것이 나로 하여금 나무를 심게 하는 어떤 전지적 참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미소가 번지던 밤. 진짜 내 나무를 갖기로 한 밤이었다.


이번 주엔 나무를 심기로 했다. 어떤 나무를 심을지 고민하며 도감을 연다. 이런 설레임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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