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에서

글쓰는 일에 대하여

by Summer Song


글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창작의 즐거움이나, 목적한 일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글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이 일은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내어 다독이고 다듬으면서, 혹은 새로이 발견해 도달하게 되는 어떤 평온한 상태와 관련이 있었다. 마음이 어려울때, 노트 패드를 열어 쓰는 글로 얻는 적잖은 위로를 얻었던 날들을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펜과 종이를 내 앞으로 끌어오는 일 만으로도 마음의 매듭이 풀리는 것 같은 경험. 글을 쓰면 그만큼의 마음을 덜어 두게 되어 그럴테다.


이것을 쇼핑 리스트 쓰는 일 같은 것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잊으면 안되니까 적어두고, 이제 장을 보러 갈때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번잡한 마음을 내어놓고 나면 그것으로 이미 뭔가 해결된 느낌이다. 내가 낸 생각과 감정이, 이런저런 연유가 문장이 되어 하얀 대나무 숲을 빼곡히 채운다. 문장들로 찬 한 바닥이, 이것으로 내가 더 생각할 필요 없는 상태에 도달케 한다. 이는 물론 느낌이고 한시적이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마음을 휘두르던 생각들에서 조금 떨어져 나온 그 느낌 - 불안하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 것들을 한번 배출한 후의 그 느낌이 나로 하여금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보는 것이다. 그래, 글이라는 것이 이렇게 좋아, 하고.


그런데 때로는 이렇게 내어 놓는 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필요한 때, 내 생각을 나눠야 할때, 이 또한 지나간다는 위로를 약속처럼 받아야 할때가 말이다. 이를 위해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일 것이다. 자칫 잘못 나누는 날엔, 하염없이 후회로 아플수가 있으니. 그러니 내 삶에 글로는 쉽게 끌어 안을 수 없는 평온함을 길어올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내게는 그런 사람들 중 조금 더 특별한 사람 하나가 있다. 내 감정을 열심으로 달려 보내 만난 사람.


그녀를 알게 된건 인스타를 통해서였다. 건너 알게 된 계정의 주인이었던 그녀는, 맑고 따뜻한 사진과 문장으로 내게 적잖은 위로와 어떤 동경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것들이 짧게 주고 받던 댓글과 대댓글로 쌓이던 어느날, 나는 나의 호감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보기로 결심했다. 일종의 팬심이었던걸까? 아니, 어쩌면 하찮으나 진지한 미래의 어느 하루를 도와줄 다정한 동지임을 안 나의 직관이 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을 것이다. 사진과 글을 통해 많이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고. 그리고 그것을 알려 드리는게 옳은 일 같아 인사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인사가 오간 후, 그녀와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담아 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이렇게 글로 만나 배워간다는 것, 나에게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그것이 벌써 8여년전 이야기다. 당시 나는 미국으로의 이민 후 첫 겨울을 나고 있었다. 햇살에는 봄의 에너지가 깃들어 있었지만 몸 안으로 충분히 따뜻해지기까지는 한참이 걸릴 시기였다. 한살 반 짜리 어린 딸 아이와 나도 자란 서울과는 한참 다른 그곳 생활에 적응을 채 해보기도 전, 둘째를 임신했고, 나는 입덧부터 피부 발진까지, 여러 신체적 변화와 번잡하고 어려운 감정들로 힘들었다. 내 몸 밖에서 어엿한 한 아이로 자라고 있던 첫째와,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던 둘째는 내게 엄마가 되어 가는 일은 나를 낮추고 때로는 또 없애야만 하는 일임을 가르쳤다. 낮추고 또 더 낮춰야 했던 날들. 울고 어떤 다짐을 하고, 또 다시 울던 날들. 엄마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일은 낮아지고 없어지며 새로이 올라가고 태어나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게 벅찬, 타지에서 홀로 의연히 소화하기는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그 일, 그러니까 엄마가 되는 일을 이제 막 시작한 여성으로서, 글 쓰는 일로 내가 살고 있음과 성장하고 있음을 감각하는 동료로서 인사를 나눴다. 감정이 커질때 글을 썼고, 그 글의 끝에서 한 발자국 나가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오직 경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한 고민과 사유를 내게 나눠주었다. 그것은 내게 달려나오는 다정한 마중과도 같았다. “당신도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지요. 저도 그래요.” 위로가 조언과 다른 일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 그녀에게 기댄 얼마 전의 그날 밤은, 시원히 해결할 수 없던 내 아이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되어 불안하고 안타까웠던 밤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하고 시작된 메시지의 끝에는 그녀와 같은 존재가 내 딸의 삶에도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혹은 찾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날 인연… 다듬어 낸 호흡으로 정성스레 만나 서로를 도닥일 위로와 격려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바람이었다. 그녀는 나의 메시지에서 내 눈을 훗날로 보내주었다. 아이의 시간을 믿는 일에 대한 이야기와, 결국 엄마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나눠주면서.


지금을 지나는 우리는 훗날을 보기 어렵다. 그녀와의 메시지에 내가 나눈 것은 지금에 대한 것들이었지만 그 안에 깃든 훗날에 대한 바람과 믿음 같은 것들이 의심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공들여야 할 일은 사랑임을 그녀의 글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 글 쓰는 일의 끝에 서있는 사람을 보게 됐다. 때로는 나이고, 때로는 나에게 귀한 누군가인 그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을 품어 사랑하는 일, 미음을 이응으로 만드는 일에 글이 있었음을 새로이 깨닫는다.


해서 올해는 더 많이 쓰고, 더 적극적으로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나아가기 위해. 잘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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