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고마운 그 무엇
순식간에 여름이 찾아왔다. 불과 몇주 전만 해도 집 앞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나무들 사이로 쉬이 보였는데, 무성해진 잎과 너울거리는 그림자에 이제 집이 어딘가 깊은 곳으로 움직인 느낌이다. 깊어지는 초록으로 황홀한 마당에, 아이 둘이 놀 작은 풀장을 펼쳤다. 아침에 담아둔 찬물이 금새 미지근해질 정도로 해가 익었다. 손을 담가 물 온도를 확인하곤 두 아이가 신이 나 서로 들어가겠다며 동동거린다.
"들어가려면 수영복으로 갈아 입어야지."
재빨리 움직이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수영복으로 갈아 입는 내내, 아이들은 더 환히 웃기 시작한다. 다다다 달려 나가 작은 풀장 안에서 연거푸 커다란 점프질을 해대는 아이들은, 푸닥거리며 그저 신나 좋단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소리와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여름 햇살을 변주하자 마음이 밝아진다. 여름. 그래, 여름이구나.
오늘은 날이 흐려 아이들과 집 안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핸드폰 알림을 보니 아이들 사진에 친구가 덧글을 달았다, "보고 싶어, 친구야." 그말에, 마음이 달캉거렸다.
은행원 친구는 아들이 둘이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며 이사까지 하고... 곧바로 코로나 때문에 정신 없었을 친구. 서로 안다, 늘 생각하고 있는데 미처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종종의 안부 인사는 뜬금 없게 보일지라도 실상 최적의 때이기도 하다. 반갑고 고마운 그 무엇.
우리는 영화를 좋아했다. 같이 본 영화, 이야기 나눈 영화가 꽤 많다. 친구는 아주 반짝이는 눈을 가졌는데, 지금까지 그 친구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내 또래를 만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첫사랑을 했고 힘든 연애도 했다. 같은 해에 결혼을 했고, 같은 해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커다랗고 중요한 장마다 함께 있었다. 미국으로 오며 서로를 앞에 두고 마음이 저려 울었다. 시차도 시차지만 도저히 목소리를 들을 감정의 용기가 생기지 않아 통화도 못하는 사이다. 그런 친구가 내 앞에서 반짝이던 아이들 사진 아래 남긴 몇자 되지도 않는 덧글에, 나는 설레고 아프고 그립고 아쉽다. 나도 그래, 친구야. 나도...
일전에 그녀의 아침과 내 밤이 만나 나눈 메세지들이 생각난다. 깊이 우려진 차를 마시던 느낌이었다, 그녀가 털어두는 지금의 이야기와 내가 보고 싶다는 말들을 읽는 일이 말이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봄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친구에게서 나는 야심한 밤 내 마음 어딘가 흐드러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봤다. 함께 시를 읽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인 내 친구. 친구의 짧은 인사에, 마음이 달리고 또 달렸다.
내 여름에, 그리고 그 친구의 여름에, 서로 어떤 힘을 보내주면 좋을까? 사랑한다고 하트 하나, 너의 말에 내 마음이 담뿍 함께라고 그렁그렁 눈물 하나, 이렇게 이모티콘 덧글을 썼다.
이번 여름엔 반갑고 고마운 그 무엇을 더 나누며 살아야지 싶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찬란한 여름과 어울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