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반찬의 힘
사랑은 결국 먹이는 일이라는 어떤 이의 글귀가 종종 생각난다.
딱히 음식 만들기가 귀찮아 싫은데 궁리하며 억지로 메뉴를 생각해내야 할때, 먹고 사는 일의 적나라한 의무감에 짓눌려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탁탁 도마 위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나를 볼때마다 말이다. 그리곤 곧 엄마가 그립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예전에 재밌게 봤던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엄마가 해준 반찬 이야기를 하던 장면. 친구와 술잔을 나누다 한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히는 아니어도 대강 그 장면이 이러했다. 주인공이 서글프고 허탈한 눈빛을 하고는 친구에게 그런다,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냥 언젠가 문득 깨달았다며, “아... 이제 엄마가 해주는 무말랭이는 못 먹는거구나.”
아... 그때 그게 정말 얼마나 슬펐던지! 우리 엄마는 건강히 잘 살아 계시고 나는 그저 퇴근 후 가볍게 웃어나 볼까 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그 장면에 목이 컥 막혀버렸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은근 자주 생각나는 이 장면은 엄마 생각, 특히 엄마 음식 생각을 하면 은연중에 연결되어 내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엄마가 먹인 밥 전부가 다 얹히는 느낌. 긴박히 눈물 고이는 일을 멈춘다, "아냐, 아직 안 얹혀도 된다고!"
아닌게 아니라, 엄마가 되어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먹이는 일의 숭고함이다. 먹이는 일은 엄마가 하는 일 중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일은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숭고하다.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 아기 일때는 살을 닿아 먹이고 숟가락을 익힐 즈음에는 얼굴을 마주해 어르고 달래 먹인다. 아이가 “맛있다! 엄마가 해주는건 다 맛있어!” 하고 얼굴을 밝혀 외쳐주는 날은, 아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라는 말 안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기분 째지는 날! 아이가 아파 밥 숟가락 뜨는 일이 힘겨워 보이면, 온 신경이, 온 바람이, 내 모든 집중이 아이가 다시 즐겁게 먹는 일에 몰두된다. "뭘 먹이면 좋을까?" 이 질문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거다. 그런데 그 먹이는 일이, 그 사랑이, 너무나 슬프게도 유한하다. 일부러 거둘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칠 의도는 아니었는데 반드시 우리 생엔 끝이 있다. 하여 늘 같은 오늘도 다 같지가 않다. 그런 유한함은 절박함을 만든다. 부재의 고통은 슬프고 아리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하는 일들 가운데 특별히 먹는, 먹이는 일이 힘들게 느껴질땐, 그래서 더더욱 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이겨낸 것들로 지금 이 순간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그러고 나면, 아득한 곳에서 따스한 힘이 실려온다. 허투루 보낼 것이 없음을 잠잠히 깨닫는 거다.
여름이 진해지니 찬물에 밥을 말아 깔끔한 엄마 오이지를 얹어 먹고 싶은 날들이 이어진다. 내일은 엄마에게 오이지를 배워야지, 생각한다. 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엄마 오이지"를 꼭 챙겨주고 싶어 말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 "엄마 반찬"의 힘을 잇고 싶다. 허투루 보낼 것이 없는, 일상의 나직한 힘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