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대해 생각하다.
아이가 얼마전 다섯살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 친구들 두루 불러 잔치를 하기는 사실상 좀 어려워서 아이 생일을 앞두고 마음이 쭉 아쉬웠더랬다. 해서 알콩달콩 우리 가족 넷이서, 생일 전 몇일에 걸쳐 조금씩, 더 꼼꼼하고 예쁘게 축하를 했다. 하루는 생일 맞아 함께 즐길 요리를 하고, 또 다른 하루는 평소 잠드는 시각을 넘겨 영화도 보고 하면서 말이다. 어둑히 여름비가 도닥이던 토요일 오후엔 남편과도 다 같이 누워 침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네살인 동안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보고, 다섯살이 되면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아이가 곰곰히 생각하며 굴리던 눈동자의 움직임, 밝게 웃으며 내뱉던 바람들이 송두리째 귀엽고 귀했다. 그것들은 쭉 적어보니 열다섯가지나 되었다. “아주 바쁜 한해가 되겠는걸?”했더니 짐짓 알고 있다는 듯 표정이 으쓱댔다.
아이가 다섯살 동안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칼질을 더 잘하기”였다. 요리를 할때 야채 같은 것을 더 잘 자르고 싶다면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생일 선물로 준비한 것들 중 하나가 어린이용 조리칼이었는데, 아이의 그 모습에, 아직 주지도 않은 선물에 내 스스로 감탄마저 했다. 잘했어, 나!
조리칼을 선물로 준비한 이유는 단순했다. 언제인가부터 내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제 놀던 것을 멈추고 와 엄마를 돕겠다며 발꿈치를 들고 종종거리던 아이의 열심에 좀더 똑똑한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 그거였다. 내 칼을 주기는 무섭고, 그렇다고 버터 바르는 칼을 주자니 무디고 말이다. 아무튼 몇가지 사둔 선물 중 하나가 의외로 이렇게 아이에게 꼭 필요한, 아이가 어쩌면 참 반가워할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고 퍽 반가웠다.
생일 아침, 아이는 풍선에 제 웃음을 실려 올리고 한국에서 온 보석반지 사탕을 열어 먹으며 신을 냈다.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벗기며 아이가 많이 반가워하는걸 보니 기쁨이 컸다. 조리칼을 보고는 ‘이런 것도 있어?’하는 얼굴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를 하며 칼 이야기를 하니 손녀를 기특해하면서 엄마가 내게 귀띔하셨다, “자를때는 잡는게 중요해. 잡는걸 잘 가르쳐줘.”
자르기 위해 먼저 잘 잡아야 한다는 사실! 아,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뜨끔했다. 내가 칼질을 잘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였구나? 잡기를 잘 못해서. 그래서 칼질은 늘 어설프고 어색하다. 때때로 다치기도 잘하고 말이다. 몸이 알고 있지만 명료하게 말로 잡아내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알고 나니 ‘내가 잘해야 아이가 잘 배울텐데…’하는 생각이 스치며 일종의 부담이 왔다. 칼을 나름 제대로 맞게 샀으니 아이와의 조리 시간은 얼추 준비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생각을 하기도 전에 존재했었던것 같았다.
아이와 그 다음날, 토마토를 다듬어 점심 준비를 했다. 자기 칼을 쓸 생각에 신이 난 아이에게 엄마가 해준 말이 기억나 새로 산 칼은 일단 내려두고 잡기부터, 자를 재료를 잡는 방법부터 가르쳤다. “할미가, 잘 자르려면 잘 잡아야 한다고 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사뭇 진지하게 “이렇게?” 묻고 자르고, 또 금새 “엄마, 이렇게?”하고 묻고 자른다. “응, 그리고 토마토는 칼을 은근히 누르며 왔다갔다, 슬근슬근 잘라야 해.” 열심히 아이는 자기 최선을 다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꽤나 애쓴 얼굴의 아이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엄마, 나 잘했어?” 도마 위 삐뚤빼뚤, 흥건한 토마토 주스가 범벅이 되어 엉망. 토마토를 자른건지 뜯은건지, 초토화되어 있는걸 보고 속으로 웃는데, 마음 깊이는 아이가 아주 대견하다. 사실 토마토는 자르기 정말 어려운 야채 아닌가! 하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커다란 토마토 두개를 그럭저럭 비슷한 크기들로 잘라낸 아이였다. 그 작고 서툰 손끝에, 자르려면 잘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연습되고 기억되기 시작했을 생각을 하니 어쩐지 어딘가 멀리서 엄마가 달려와 준것 같아 감동이 넘쳤다.
아이와 함께 준비한 점심상에 넷이 둘러 앉아, 나는 대를 넘어 이어질 작고 큰 지혜에 대해 생각했다. 넘치는 일상 가운데 어렴풋이, 그러나 또렷히 남는, 깊은 자국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