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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Oct 15. 2020

나는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되었나?

경제+미술 전공생이 어쩌다 요리를 하게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궁금하지 않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여긴 tmi 푸는 공간이니까!

 사실 요리를 경제랑 미술보다 먼저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중학생때로 거슬러올라가니까요.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서 물들어온 김에 노 저어봅니다.

남극에서 대체 무슨일이 있었냐는 댓글을 받은 사진


에브리타임에 2020.02.17. 에 게시한것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조리보조' 로 온 것인데, 요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퇴근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만화 '식객' 이었죠. 스무 권도 넘는 시리즈를 서너 번은 본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 요리가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고,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인생사 희노애락을 배웠죠. 대학오기 전까지 세계를 보는 관점의 절반 이상을 형성해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여성 비하적인 부분이 많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순 없는 책이기도 하고요.)심지어 고등학교 입시때 자기소개서의 감명깊에 읽은 책 부분에 식객을 썼을 정도니까요. 담임선생님께도 욕먹고 입학하고 나서 고등학교 선생님께도 "만화책을 쓰고 들어온 애가 있다"고 회자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치만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는 요리에 대한건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2학년 말에 요리대회에 한번 나갔다가 예선탈락했던 경험을 빼면. 휘황찬란하게 플레이팅 하는 조리고 친구들을 집에서 할머니 레시피로 만든 곶감말이로 이기려 했던건 지금 생각해도 웃겨요.


 다시 요리를 했던 건 수능이 끝나고서였습니다. 시간이 남아도니까 요리를 좋아했던게 생각나서 한식을 3개월 가량 배웠습니다. (보통 그때 운전면허를 따던데 전 그래서 아직도 면허가 없습니다.) 꽤나 재밌는 기간이었습니다만 이것도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개인정비 시간이 꽤나 많아서 뭘 하고 살아야할지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전공이었던 경제는 1년동안 해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고, 살면서 해본 것 중엔 그래도 요리가 제일 재밌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또한 직업 선택의 기준이 [1.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일 것 2. 다른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것] 인데 요리가 이 두가지를 완벽하게 충족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대하자마자 1년간 휴학을 하고 요리를 배웠습니다. (제대후 1년은 일반휴학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습니다.) 한식,제과, 중식을 배웠는데 자격증은 한식조리기능사만 취득했습니다. 합격했을 때 정말 인생에서 손에꼽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근데 요리 자체는 재밌는데 요리사들 모임이나 멘토링(권우중, 박찬일 셰프님 등..)을 하면 할수록 제가 생각한 요리사는 환상일 뿐이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직업 선택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할 확률이 높기에 직업으로서의 요리사는 그렇게 포기했습니다. 아예 불가능한건 아닌데 그렇게 하려면 정—말 요리를 사랑하고 미쳐야 하는데 저는 그만큼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모든 걸 포기하고 요리만 할 자신이. 물론 요리하는 것 자체는 정말 행복하기에 평생의 취미로 가져갈 것이긴 하지만요.


 이쯤에서 휴학하고 요리사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하는 의문이 드실겁니다. 요리사를 하겠다는 것과 휴학계획을 처음 말씀드렸을 때는 별다른 반대가 없으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군대가서 고생했으니 1년정도 쉰다고 생각하시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요리사의 꿈을 접었다고 말씀드리고 나서야 "그때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고 하시더라구요. 내색을 안하셨던 거지 속앓이를 적잖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무튼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복학을 했습니다.여전히 공부는 재미가 없고 꿈은 붕 떴고.. 간판때문에 다닌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러다 여름에 친구가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당시 시리아 난민에 관심이 많았는데 난민이 많은 중동 국가에 요리 학교를 세우면 어떻겠냐는 얘기였습니다. 일반적인 학교와 달리 배운것이 바로 경제적인 도움이 되기에 부모들도 보내고 싶어할 거고, 그곳의 청소년들을 범죄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갑자기 왠 난민이냐 하실텐데 고3때 저랑 제 친한 친구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 친구는 철학과에, 저는 경제학과에 진학했죠. 그래서 1학년때 학과장님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는건지, 경제를 계속 공부하면 가능한지 등을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불가능하다' 였고, 그렇다면 전쟁 피해자만이라도 돕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난민은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요리학교는 [세계평화+청소년+요리+교육] 이기에 제가 좋아하는 모든게 합쳐진 꿈이었죠.


 다시 돌아와서, 요리학교를 세운다는 꿈을 가진 때가 2학년인 2018년 여름방학때입니다.그렇게 꿈을 키워가다 9월에 미쉐린가이드 고메페어라고 유명 레스토랑과 셰프들이 모여서 팝업스토어를 하는 행사에 참석했다가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되게 뜬금없는데 거기에 평소 존경하던, 그리고 유명한 셰프가 있길래 싸인을 받으면서 '내 꿈이 이러이러하다' 라고 소개를 하니까 제 인적사항을 묻더니 다음주부터 자기 레스토랑에 와서 일해보라는 겁니다.


 처음엔 되게 당황했는데 좋은 기회인것 같아서 며칠 후에 면접 보고 일을 하게됐습니다. 학교와 병행해서 주3일을 근무하기로 했는데 처음엔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지만 학점4 이상 받을테니 신경쓰지 마시라 하고 버릇없이 전화를 끊었던, 면접 직후의 일이 생생합니다. 그럼에도 출근하는 아들을 위해서 함께 돌아다니며 옷을 사주셨죠. (결국 약속을 지키긴 했습니다.)


 여튼 하루에 다섯시간 정도만 자고 집에서 한시간 좀 넘게 걸리는 압구정로데오역 근처 레스토랑에 출근해서 근무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날엔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도 행복했습니다.전날밤엔 출근이 싫지만 막상 일어나면 무슨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게 됐거든요. 일을 잘했던 건 아니지만 코치나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행사로 대관이 있는 날에 모델들이나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는건 참 재밌고 신기했습니다.

열심히했고 잘했다고 칭찬도 받았지만 통편집 되었던 탈락자인터뷰

 그 후로도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레시피 대회나 jtbc에서 했던 쌀을 주제로 한 레시피 대회 등에 참가하면서 상도 받고 tv에도 나오고(5초지만..) 인터뷰도 하는 등 요리에 대한 끈은 계속 붙잡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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