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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Dec 13. 2020

남극에 없는 것들

엄청 커다란 모기가 나의 발을 물지 않아 다행이다

길냥이, 아기, 슈크림붕어빵, 야경...

 남극엔 없는게 정말 많다. 휴대폰 판매점도 없고 안경점도 없기에 비상용으로 하나씩 더 챙겨가야 한다. 당연히 식당이나 카페도 없다. 그 수많은 없는 것들 중에 내가 제일 그리웠던게 저 네 가지다.


 사실 길냥이가 없는건 당연한건데 왜그리 아쉬웠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선 동네 산책이나 등굣길에서 항상 볼수 있기도 했고, 당시 기온이 한국과 비슷한 영상 5도 내외라 그랬던것도 같다.

 동네 철물점 강아지들도 무척 그리웠는데, 아기도 그렇고 문득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에 공통점이 있다는걸 깨달았다. 남극에 없는건 바로 ‘귀여운 것’ 들이다. 펭귄이 귀엽지 않다는 건 질리도록 얘기했고, 해표는 귀엽지만 가까이 갈 수도, 만질 수도 없기에 아쉬운 건 여전하다. 그에 비하면 길냥이와 강아지와 아기는 어떠한가. 냄새도 안나는데다 가까이 갈 수도 있고 잘하면 만질 수도 있다! 뭐 펭귄도 길을 잃어서 기지 앞으로 오거나 아무런 목적 없이 앞 펭귄을 따라 빙빙 도는 모습을 보면 약간 귀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슈크림 붕어빵. 남극에서 친구들 인스타에 종종 붕어빵이 등장했다. 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겐 슈크림 붕어빵 생각이 간절했다. 붕어빵 틀도 없고 반죽은 어떻게 굽는다 해도 슈크림을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 한국 도착하면 먹기로 했는데 자가격리가 풀리니 따스한 5월 중순이 되어버렸다. 결국 겨울이 다 돼서야 먹었는데, 뭔가를 먹다가 울 뻔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11개월만에 이룬 소원은 내 인생에 몇 없었는데.. 그 외에도 그리운 음식들이 많았다. 2월부터는 구경하기 힘들어진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부터 시작해서 회, 족발, 치킨 등등.. 치킨은 축구를 보면서 만들어 먹은적도 있긴 하지만 특정 브랜드의 특정 메뉴가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국이었으면 정말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소망들인데 거기선 소원 수준이 되어버렸다.

 야경이 없다는 말은 곧 밤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머물렀던 기간 중 11~2월은 여름이라 해가 지지 않았다. 한달 쯤 지내니 하늘이 어둡다는게 상상이 안될 정도였다. 친구가 영상통화로 학교의 야경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친구한테 계속 “와 야 하늘이 까매! 와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하늘이 까맣지?” 라고 했다가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학교랑 서울 시내가 참 아름다웠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향수를 느낀 것 같다. 한국 밖에서 살아본 게 처음이라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2월말~3월 초쯤 되니 잠깐이지만 완전한 밤이 찾아왔는데 여전히 퇴근길 정체와 야근으로 만들어지는 야경은 볼 수 없었기에 야경이 그리웠다. 그랬기에 쇄빙선에서 본 뉴질랜드의 야경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문명세계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흐를 정도였다.


 어쩌면 위의 네가지보다 더 자주, 일상에서 느꼈던 그리움은 LTE 일지도 모른다. 당연하면서도 신기하게 남극에서도 인터넷이 된다. 2Mb/s 의 속도인 인터넷을 20~100명이 사용하기에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느리다. 이론상으론 한국에서 LTE 평균 속도가 150Mb/s 니까 대략 1500~7500배 정도 느린 거다. 월급 확인하러 인터넷 뱅킹 접속에 30분이 걸린 적도 있고, 말로만 듣던 모뎀시절 이미지가 한줄씩 뜨는 것도 경험해봤다. 휴학 신청 페이지 접속이 안돼서 양해를 구해 다른 접속을 잠깐 막고 겨우 휴학 신청을 마치기도 했다. 유튜브는 꿈도 꾸지 못하고, 음악 스트리밍도 5뿐 기다리면 3분짜리 곡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인 것은 남극에서도 여전한가보다. 다른 기지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폰 보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주로 뉴스를 확인하거나 고국의 가족과 연락하는 것 같았는데 저 느린 인터넷 조차 남극에선 초고속인 것이다.

 그립진 않았으나 남극에선 익숙해지고 한국에 와서야 체감한 건 벌레가 없다는 것이다. 파리나 바퀴벌레는 물론 그 흔한 모기조차 없었다. 사실 자생하는 몇몇 동식물과 인간을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게 더 맞겠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다.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온 식재료에서 벌레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온 기지를 다 소독해야 한다는 얘길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혹시라도 외부에 유출되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기에 온실에서 키우는 채소조차도 특수한 처리를 한 것만 들어올 정도다.


 반대로 남극에만 있는 것들도 있다. 기지 앞에 하루 온종일 누워있던 해표와 길 잃은 펭귄, 위협적이던 스쿠아 등의 동물들도 물론 그립지만 남극의 환경 자체가 그립다. 하루 종일 해가 떠있었기에 저녁에 퇴근하고도 언제나 볼 수 있었던 빙벽, 얼음이 떠다니다 다시 언 바다가 눈에 아른거린다. 언제고 빙하를 떼와서 위스키를 온더락으로 마실 수 있었고, 등산할 때는 물을 챙길 필요 없이 눈을 퍼먹으면 되고 내려 올 땐 썰매를 타고 내려오면 되던 그 환경이 그립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다시 기승을 부릴 땐 남극의 차갑고 맑은 공기가 정말 그립다. 가끔씩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고국이 그리웠던 것보다 아마 점심 먹고 낮잠을 자서 그랬을 거다) 통신실 테라스 쪽으로 나가 찬바람을 쐬고 들어와 몸을 노곤하게 만든 후에 잠을 청하기도 했다. 영하 20도의 밤공기를 한가득 마시면 코부터 폐까지 차가워지면서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특히 출남극이 가까워지면서는 이 공기를 마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양껏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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