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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Jan 05. 202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역의 해, 아니 귀국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야 선생님, 친구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반가운 답변들. 레트로갬성의 연하장은 월동대 공통양식.

 현재 프로필 사진이자 여기저기 우려먹은 저 사진은 새해 전날 찍은거다. 2019년 12월 31일. 그리고 몇 시간 뒤, 물리적으로 남극을 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일기엔

‘여유롭고 좋은 하루였는데

 저녁에 옷에 걸려서 떨어지는 불판 잡으려다 팔목을 찍혀서 힘줄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2바늘 꿰맸다. 다치고 수술실에 앉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얼마나 일을 못하게 될까. 일주일? 빨리 나아야 하는데. 몸이 힘든 것 보다 마음이 불편한 게 훨씬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라고 써 있다. 그리고 저때 생긴 흉터는 아직도 손목에 자리하고 있다. 힘줄을 둘러싼 막까지 살짝 찢어졌고, 관리한다고 해도 물에 자주 닿다보니 결국.. 뭐 크게 티나는 부분도 아니고, 누가 물어보면 “제가 남극에 있었을 때...” 로 시작하는 tmt 시동기로 적합한 남극의 징표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쉬는 동안 쓴 일기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되어야 한다.

 예전에 어른들이 사람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던 게 이런걸까.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

 한 때 유한계급이 꿈이었던 나로서 꽤나 의미있는 경험이다‘

 라고 써 있네. 지금은 유한계급인데 일은 자아실현용으로만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저때는 다들 고생하는데 나만 쉬는게 불편한 마음이 컸으리라. 아무튼 이틀간 쉬고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몇주 후엔 얼른 일을 그만하고 싶어졌지.


 1월 3일엔 중국 쇄빙선인 설룡호에서 열두명이 왔다. 짧은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는데 굉장히 놀라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대답은 무슨 소린지 몰라서 알아듣는 척만 했다.

   

 저때 즈음 갑자기 한의사가 하고 싶어졌나보다. ‘도덕적으로 타협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고소득이면서 워라밸을 챙길 수 있는 직업’을 찾다 내린 결론. 지금은 생각도 안하는 진로인데 저땐 왜 저랬지. 온갖 생각을 다 했던 시절. 흥미롭게도 저 ‘도덕적으로 타협~’ 직업의 조건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들은 생각이다. 왜지? 손가락 썩는 아저씨 같은 사람을 상사로 둔다는 게 너무 싫었나?

 한의사를 꿈꾼게 1월 4일인데 (그 한달쯤 전에도 고려는 해봤다), 1월 5일 일기엔 ‘한의사는 생각해 봤는데 변호사가 나을 거 같다.’ 같은 얘기가 써 있다. 야 그게 쉽냐;; 뭔 초딩때 꿈이 대통령같은 소릴 하고 있어. 그래도 고민은 많았나 보다.

‘뭘 하고 살아야 할까. 걱정. 은 하지 말자. 는 생각이지만. 스물다섯. 이라는 나이는. 마음을 약간은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걸 바라나.’

 ‘고소득 워라밸 안정성 =?

  데스티니다 일단은‘

 뭐 이런 이야기도 써 있네.


 일기를 훑어봐도 저것들 외에 별다른 말은 없다. 갤러리를 뒤져봐도 1월 초까지는 대단한 이벤트는 없었던 것 같고. 그래도 지금은 까맣게 잊은 이야기들을 발견할때마다 무척 재밌다.

 아, 한국에선 좋아하지만 비싸서 자주 못먹었던 감자칩을 많이 먹고 가야지라는 결의가 담긴 문장이 있긴 하네..


  헐 갤러리 다시 보니까 길 잃은 아델리펭귄이 기지 앞까지 온게 저때였다! 하도 우려먹어서 전혀 새로울 게 없을 것 같지만.. 크리피하게 생겼지만 팔을 젖히고 배내밀고 뛰는건 귀엽다. 인형같애..

  저때까지만 해도 만 23세였는데, 이젠 만 24세다. 친구들은 27살인데 나는 만 24세인 이 일주일의 기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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