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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Jan 09. 2021

남극에서 맞이하는 생일

눈물 젖은 배추전을 드셔보셨나요

 만 23세에 남극에 왔는데 한국나이로도, 만 나이로도 한 살을 더 먹고 가게 됐다.


 사실 남극에서 맞이하는 생일이라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앞서 월동대의 생일파티를 몇 번 보기도 했고, 어차피 나는 파티를 위한 요리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생일 음식을 내가 하겠구나 정도? 그리고 한국에 없어서 그간 뿌린 생일선물들 수금이 어렵겠구나 하는 아쉬움까지. 뭐 인생이 기브앤테이크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하나또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이게 웬일. 남극 시간에 맞춰 열두시에 땡 하고 축하를 해준 사람들부터, 하루 종일 엄청난 축하메세지를 받았다. 아마 그 전 두 번의 생일을 합친 것보다 더 받았을거다. 한국 가면 쓰라고 기프티콘도 받았고, 심지어 가족을 위해 집으로 귤을 선물해준 사람까지 있었다.


 생일 음식도 빼놓을 수 없지. 고기를 좋아하는 날 위해 아침엔 소고기 듬뿍 미역국, 점심엔 닭다리살 스테이크와 버팔로윙, 저녁엔 티본스테이크가 메뉴였다. 어차피 내가 만드는 거긴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쏘냐. 하지만 그 모든 육류를 뛰어넘는 음식이 하나 있었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음식을 꼽으라면 꼭 들어갈 남극의 배추전. 생일 즈음이 향수병이 도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배추전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혜화역 근처에 있는 막국수집에서 먹은 배추전. 하지만 남극엔 배추가 없지. 그래서 체념하고 있었는데 먹고 싶은 음식을 묻던 조리장이 배추전 얘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손수 김치를 한올한올 씻어서 배추를 창조해냈고, 결국 아주 맛있는 배추전을 만들어줬다. 먹으면서 울 뻔했다. 그 막국수집이 생각나고 조리장의 정성과 마음에 감동. 와 이 문단에서 ‘배추전’ 이라는 단어만 몇 번이 등장하는거냐. 그만큼 임팩트가 큰 음식이었다는거지. 써놓고 보니 별거 아닌거 같은데, 하루 세끼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밥하기도 바쁜데 김치를 한올한올 씻고 부침가루 입혀서 지져내는 수고를 해줬다는건 정말 어마어마한거다.


 남극에서 받은 선물도 잊을 수 없다. 생일이라고 통신대원이 전지사이즈의 포스터를 만들어줬다. 남극과 아이유와 나를 합성한.. 왜 아이유냐고? 나도 통신대원도 팬이라서.. 대장님한테 글렌피딕도 선물받고, 다른 분들께도 각종 기념품과 선물을 받았다.


 생일 이틀 뒤엔 극지적응훈련으로 밖에서 텐트도 치고, 다음날엔 등산도 다녀왔다. 분명 30분이면 간다고 하셨는데 1시간 15분이 걸렸다. 5분만 가면 된다는 얘기를 5번은 들은 것 같다. 정말정말정말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본 풍경은... 사진과 영상으론 다 못담겠지만, 말로는 좀 표현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걸 다 말해버리면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의 차이가 없어지잖아? 온통 하얗고 파란 와중에 구름 그림자가 근사했고, ‘가슴이 웅장해진다’, ‘가슴이 벅차다’ 와 같은 말들의 사전적 정의에 들어가면 알맞을 풍경정도라고만 해두겠다.

 남극에서 등산하면 한국과 달리 장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을 챙겨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내려올 때 무릎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목마르면 눈을 퍼먹으면 되고, 내려올 땐 썰매처럼 누워서 내려오면 되기에. 남극에서 썰매 타보셨나요?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에버랜드 롯데월드 다 포함해 남극 썰매는 top3 어트랙션입니다. 오래 타면 엉덩이가 축축해지는게 단점이지만 여튼. 기지에 돌아와서 씻으면서 보니 몸무게가 0.5키로나 줄어있었다. 정말 고된 등산이었나보다.


 아참 저때쯤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 식기세척기가 고장나서 제조사에 전화니

“지역 서비스센터에 문의하시면..”

“여기가 남극이라서 그런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지역 서비스 센터를 찾아주시면..”

“아니 여기가 남극이라니까요”

“가장 가까운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시면..”

이처럼 믿지 않거나 장난전화인 줄 아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긴, 내가 식세기 회사 직원이어도 뭔소린가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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