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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태 Jan 25. 2021

남극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8가지

춥지도, 감기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은 남극

춥지도, 감기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은 남극

1. 겁나 춥다.

2. 그래서 바이러스가 못 산다.

3. 눈이 자주 온다.

4. 펭귄 먹어요?

5. 펭귄 맛있어요?

6. 펭귄은 귀엽다.

7. 통조림만 먹고 산다.

8. 남극에선 오로라가 잘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남극에 대해 내가 가졌던, 혹은 주변에서 질문받았던 내용을 토대로 오해와 진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다만, 나는 장보고 과학기지에 2019년 11월부터 2020년 3월 까지만 있었다. 남극의 다른 공간과 시간은 경험하지 못했기에 어느정도 한정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것임을 밝힌다.

    

 1. 겁나 춥다.

 이 문항부터 맞는말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반만 맞다. 적어도 12월엔 서울보다 따뜻했다. 서울이 영하10도였을 때 남극은 영상이었다. 일 최고기온 순위를 보면 영상 7.9도를 찍은 적도 있고, 내가 있었던 시기도 영상으로 올라간 적이 꽤 있었다. 그리고 실내는 발전기 폐열로 난방을 하는데 25도 정도로 무척 따뜻하다. 가기 전엔 선풍기 챙겨간다는 분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도착 하고 나서야 그분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 물론 추울땐 정말 춥다. 남극의 겨울은 영하 30~40도 정도 되는데 여기에 바람이 20~30m/s 로 분다고 생각하면 체감온도는 –60 밑으로 떨어진다. 풍속의 극값은 41m/s가 넘고, 바람이 심할 때는 영하 10도만 되어도 장갑을 벗으면 30초만에 손가락이 떨어져나갈 것 같다.




2. 그래서 바이러스가 못 산다.

 이건 나도 어디서 들어봤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기도 하다.(남극엔 바이러스가 못산다면서?) 그런데 내가 장보고 과학기지에 처음 갔을 때 3주 정도 감기가 유행해서 다들 콧물을 달고 살았다. 아니 이게 무슨일이람? 사실 위에 썼듯이 여름엔 기온이 그리 낮지도 않고, 특히나 실내는 20도가 넘어가기 때문에 만약 외부에서 감기에 걸린 사람이 들어온다면 옮길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그런데 외부인 유입이 없다면 감기가 한번 유행한 후엔 다시는 감기가 유행하지 않는다. 주변에 숙주가 될만한 동물도 많이 없고. 그래서 나중엔 영하 15도에 상하차를 하고 밖에서 깨벗고 있어도 감기에 걸리진 않았다. 아무리 춥고 콧물이 나고 몸이 무거워도 자고 일어나면 말-끔한 몸상태가 된다. 다만 동상이 걱정될 뿐. 물론 영하 60도인 남극점 근처는 바이러스가 아예 못 사는 환경이긴 할 것이다.


3.눈이 자주 온다.

 이건 내 오해인데, 남극에서는 하루 걸러 눈이 펑펑 내릴 줄 알았다. 그러나 첫 3주동안 쌓인 것 외에 내리는 눈을 구경하지 못해서 놀랍고 실망스러웠다. 오죽하면 첫눈이 왔다고 신기해서 일기에까지 써놨을까. ‘눈이 왔다. 일종의 첫눈 이랄까. 예뻐서 울컥. 망원경으로 보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장보고기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에 하얀것들은 뭐냐고 할텐데, 적어도 내가 있던 기간엔 내린 눈보다는 어딘가에서 날아와 쌓인 눈이 훨씬 많았다. 많이 쌓이면 문이 안열려서 당직서다가 갇히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극은 한랭사막이다. 사막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비가 안 오고 건조한 곳.   


4. 펭귄 먹어요?

되게 잔인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건 어린이들과 화상통화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일단 먹을게 펭귄 말고도 많아서(해표를 먹는다는 말은 아니다.) 굳이 힘들게 야생동물을 사냥할 필요가 없고, 또 20세기초 섀클턴이나 아문센 탐험대처럼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잡아먹으면 안 된다.


5. 펭귄 맛있어요?

 가끔 위의 질문을 건너뛰고 바로 이 질문부터 하는 경우가 있는데(먹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건지) 먹어보지 않아서 맛을 모르겠다. 조류니까 조류의 맛이 나고 야생동물이니 향이 강하지 않을까


6. 펭귄은 귀엽다.

 논란이 되겠지만,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귀엽지 않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도 있겠지만 일단 펭귄도 새다 보니 모여있는데선 닭똥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회색에 보송보송한 아기 황제펭귄도 털갈이 직전엔 꽤나 크기 때문에 그렇게 귀엽지 않다. 키가 1m 이상인 조류를 마주하면 기분이 묘한데, 그것도 수십 수백마리라면 묘한 것 이상이다. 냄새가 많이 나는 것도 있지만 정말 난생 처음 본 동물이기에 신기함과 놀라움이 귀여움을 넘어서는 것도 그 이유같다. 오죽하면 내가 제3전공에 경영 넣어놓은걸 버리고 생물학해서 펭귄 연구팀에 낑겨 펭귄을 보고싶다고 생각했을까. 한편, 아델리펭귄은 정말 크리피하게 생겼다. 눈동자 주변의 하얀 것이 흰자위가 아니라 털이라는걸 알게 된 순간부터 굉장히 이상하게 보였다. 아장아장 뛰는건 귀엽긴 하지만. 그런데 또 한국 와서 영상이랑 사진을 다시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사진발 정말 잘 받는 친구들 이다.



7. 통조림만 먹고 산다.

 이건 영화 ‘남극의 쉐프’ 때문에 생긴 오해인 것 같다. 나도 남극에 가면 막 통조림이랑 인스턴트 식품만 먹고 살아야 되는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하계 연구팀으로 오셨던 분이 평균적으로 4kg 정도는 쪘다며 불평할 만큼 먹는건 잘먹었다. 대게, 랍스터, 전복, 티본/안심스테이크, 양갈비 등등.. 다만 야채나 과일같은 신선식품이 4월부터는 귀해지긴 하는데 온실이 있어서 상추는 월동대가 샐러드해먹을 정도는 자체 수급이 된다.


8. 남극에선 오로라가 잘 보인다.

 ‘오로라는 예쁘다’ 로 하려다 참았다. 극지방이면 다 오로라가 잘 보일 줄 알았는데 장보고과학기지가 있는 곳 근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기지를 배경으로 멋들어지는 오로라 사진이 있길래 기대했다. 오로라를 본 형이 별거 없다고 해도 “그래도 본 게 어디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 며 성을 냈었다. 결국 기지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지만, 쇄빙선에서도 며칠 더 남극 근처에 머무니 날이 맑을 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다. 매일 밤 추위를 무릅쓰고 밖에 나간 끝에 결국 마주했다. 그때의 느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별거 없지만 그래도 본게 어디냐.” 정말 별게 없었다. 아니 맨눈으로 보면 저게 오로라인지조차 의심스럽다. 흐리고 뿌연 안개나 구름같이 보였다. 카메라로 찍어야 흑백이 아닌 초록과 주황의 컬러로 나왔는데, 흔들리는 배 위라 그마저도 희미했다. 같은 날에 기지에서 찍은 걸 보니 그래도 ‘우와’ 할 정도의 멋진 사진이라 배가 아팠지만, 맨눈으론 안개같았다는 말에 질투가 사그라들었다. 남극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은 귀국한 뒤엔 바뀌었지만 오로라가 별 거 아니란 건 여전하다. 물론 맨눈으로 풀컬러 오로라를 본다면 당연히 아름답겠지. 하지만 내가 본 건 안개같아서 별로였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그래도..” 라며 여전히 부러워한다. 진짜 별론데 다들 우와 하니까 “난 오로라를 봤다! 너넨 못봤지!”라고 하면서 대단한것처럼 말하고 자부심을 가져야하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나도 먼저 보고 그런 말을 한 형에겐 분노를 느끼기까지 했으니 이해는 간다. 세상은 오로라를 이미 본 사람과 오로라를 보고싶은 사람으로 나뉜 기분인데 아무튼 난 오로라를 봤으니 됐다.

흔들리는 배에서 겨우 찍은 오로라
은하수가 훨씬 더 신기하다. milky way가 정말 직관적인 이름이었구나.



 번외로, 북극곰은 남극에 살지 않는다. 가끔씩 북극곰 보고 왔냐는 말을 듣기도 하고, 아예 북극에 다녀온 걸로 기억하는 분들도 계신다. 북극곰이 남극에 산다면 펭귄에겐 천적이 늘어나는 셈이니 약간은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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