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또한 인스타그램에 써둔 걸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엔 에브리타임에 써놓은 글도 들어있네요.
2020.09.11
그러고보니 남극에서 보낸 것의 3분의 1 가까이 되는 기간만큼을 쇄빙선에서 있었는데 그때 이야기는 올린 적이 거의 없군요. 이 글도 원래는 거창하게 이것저것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바빠져서 생각나는대로 씁니다.
처음 쇄빙선에 타고 제일 감격했던 건 김치였습니다. 두유노 김치의 그 김치말이죠. 사실 한국에 있을 땐 거의 먹지 않지만 이상하게 외국만 나가면 생각이 나는 음식이죠. 뭐 남극에서 그래도 배추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겉절이 등등 많이 먹어서 아쉽진 않았습니다. 라고 배에 타기 전까진 생각했습니다. 탑승하고 저녁을 먹는데 생김치-냉동김치의 반의어로서의-가 있는겁니다. 5개월만에 보는 생김치. 처음엔 평소 먹던 양만큼 조금 담았는데 세상에나. 김치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요. 메인 메뉴가 소갈비였는데 그건 조금만 먹고 오히려 김치만 한접시 넘게 먹었습니다.
아이스크림과 각종 과자, 빵 등이 무료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죠. 여러분 빠삐코가, 설레임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십니까. 거북알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정작 한국에선 1년에 하나 먹을까 말까 한 아이스크림인데.
쇄빙선 위의 삶은 자유,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니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걸 하면 됩니다. 그리고 책임. 갑판에 나가서 바다를 구경하다보면 ‘여기 빠지면 어떻게 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요, 항해사 분께 여쭤보니 각자도생해서 자기 목숨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빠져도 알 수도 없고, 당시 얼음이 떠다니던 바다는 어차피 빠지면 몇 분 안에 죽을 테니까요. 물론 파도가 많이 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갑판으로 나가는 문이 잠기고, 갑판에서도 상체 전부를 바깥으로 내밀지 않는 이상 빠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냥 겁주고 싶었어요. ‘쇄빙선’. 발음만 들어도 으시시 하니까.
하 또 일기 뒤져보면 쓸거 많을텐데 바쁘니 우선 에브리타임에 써놨던 것 일부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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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부터는 태평양이라는 이름대로 바다가 아주 고요했습니다. 한 3~4일? 정도만 멀미를 했던 것 같네요.
하루 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저녁에 노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일봐도 다르고 어찌나 아름답던지. 육지 근처일때는 밤새고 일출도 봤는데 참 좋더라구요.
흔한 방 뷰
하루 일과는 일어나서 점심먹고 책읽고 드라마보고 영화보고 저녁먹고 노을보고 책드라마영화보고 날좋으면 별보고 의 반복이었습니다.
남위 20도부터는 꽤 덥더라구요. 제 방이 에어컨이 잘되는 편이 아니라 얼음물을 껴안고 지냈습니다. 바다 색깔이 정말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바다의 이데아를 봤다고나 할까요.
돌고래도 두어번 봤습니다. 노을빛을 등지고 서너마리가 점핑하는것도 보고 멀리서 지느러미만도 보고.. 사진엔 거의 분간이 안될정도로만 담겼네요. 근데 사실 제가 혹등고래를 봤고 등에서 분수 푸솨삭 뿜어져나오는거 봤다고, 근데 바로 들어가서 사진은 못찍었다고 해도 여러분은 믿는수밖에 없겠죠뭐. 아 날치도 봤는데 처음엔 새인줄 알았어요.
파푸아뉴기니 근처에 가니 번개가 많이 쳤는데 바다에서 보니 어디서 번개가 치는지 보여서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이들 아시겠지만 4월 20일날 파푸아뉴기니에서 선원 25명을 태우고 왔습니다. 선원 중 한국분은 5명? 9명? 정도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승선시 체온 측정도 했고 파푸아뉴기니 탑승자는 2데크만 사용하고 식사시간 및 동선도 차별화하거, 선내 마스크착용 등 전염예방을 위한 일들이 진행됐습니다. 사실 저야 뭐 조금 불편한 정도였지만 아라온호의 선원분들의 희생이 정말 컸습니다. 추가된 업무와 항해, 귀국 후 자가격리까지..
열심히 운동과 다이어트를 하다가 파푸아뉴기니부터는 체육관사용도 못하고 또 잘먹어야 코로나 안걸리겠다는 생각에 막판에 3키로가 넘게 찌기도 했습니다. 오뉴블보면서 프링글스 먹은 탓도 크겠지요.
참 한국이 그리웠습니다. 귀국날 밤을 새다시피했는데 멀리서 불빛이 보일때 얼마나 기쁘던지. 일출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대한민국도 남극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에요.
귀국 하루전인가 파푸아뉴기니에서 탄 선원중 한분이 열이 나서 광양항에 입항 후 그분만 코로나 검사를 했습니다. 음성이 나오고 나머지 사람들도 체온 검사를 하고 드디어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육지멀미를 기대?했으나 별다른게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집에와서 자려고 누우니 배에 탄것처럼 출렁이는 느낌이 들어서 놀랐습니다. 그러고도 몇시간동안 걷거나 누우면 배에 탄 느낌이 들었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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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에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그 전까지는 살면서 배를 타본 시간을 다 합쳐도 10시간이 안 될텐데 비행기가 없어서 40일간 쇄빙선으로 적도를 거쳐 1만3천km를 왔네요. 3월 이후의 여행 거리로 따지면 아마 한국인 중엔 상위권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행 시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