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극의 쉐프' 를 보고 '남극에 가면 꼼짝없이 갇혀 통조림과 냉동식품만 먹다 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극은.. 음식에 있어선 천국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이것도 처음 한두달, 물자수송이 되는 하계기간에 한해서긴 하지만요. 한국에서 먹었으면 한달 식비만 백만원은 넘게 나왔을 것들(물론 요리를 조리장과 제가 했지만..)이 가득했습니다. 안심등심티본스테이크/대게랍스터전복훈제연어초밥 등등. 거기에 각종 과일과 기지 내 온실에서 키운 채소까지. 오죽하면 연구원분들이 '그만좀 맛있게 만들어주세요. 살 빠질 줄 알았는데 5kg이나 쪘어요ㅠㅠ' 하는 칭찬을 해주셨을까요. 친한 분들께 여쭤보니 평균적으로 체중이 5kg 늘었다고 하시더라구요. 한달 반정도만에.
하지만 역시 인간은 없는걸 찾는 존재죠. 밑에도 나오겠지만 제일 먹고싶었던 건 슈크림 붕어빵입니다. 그것 말고도 먹고싶은건 많았습니다. BBQ 치킨이나 광어회 등등. 매주 먹는 안심스테이크조차 질리더라구요. 한국 온지 몇달만에 그때 좀 더먹어둘걸 하는 후회가 들긴 했지만.
아래 내용 또한 인스타그램에 있던걸 가져온 겁니다. 사진엔 고기가 다수 포함되어있어 마지막이 맨뒤에 몰아놓겠습니다. 인스타엔 지금 1년전 오늘 남극에 가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연재중인데 여긴 좀 천천히 올릴게요. 브런치에 선공개되는 컨텐츠도 있을 예정이긴 합니다!
+댓글에 세금이 아깝다, 호강이다 하시는 분이 있어 덧붙입니다. 저 또한 세금 내는 국민 중 하나로 세금이 적절한 곳에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남극에서 제 소원이 귀국하면 카페가서 커피마시기, 영화관가서 영화보기, 공원 산책하기 였을 만큼 남극은 별다른 즐길거리가 없고 고립된 곳입니다. 여름엔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엔 해가 뜨지 않아 잠을 설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긴 기간동안 가족과 떨어져지내야되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도 대원중 한 분이 잠도 못자고 가족도 그리운 상황이지만 먹는 낙으로 버틴다고, 고맙다고 하신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좋은 점을 표현한 부분이 많지만,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소고기류는 올때 호주에서 사면 한국의 절반 이하 가격입니다. 식비 백만원도 한국에서 사먹는 가격이지 여기선 원물도 손질하고 조리하니 재료비만 따지면 크진 않을겁니다. 좀 울컥해서 말이 길어졌네요.
2020.06.24
남극에선 무엇을 먹을까?
제가 조리보조였기에 남극에서 무엇을 먹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이번엔 음식 관련 사진만 잔뜩 가져왔습니다. (고기 사진이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에탐에 올렸던 걸 가져온 부분이 있어서 문체가 좀 어색할 수도 있고,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지난번에 대략 설명해서 겹치는 내용도 많을 겁니다.
조리장은 양식/한식 전문, 함께 일한 조리보조분(조리장 친구aka조조리장)은 오리엔탈 전문이라 거의 모든 종류의 요리를 접했습니다. 또 재료가 다 무료니까 조조리장 같은 경우엔 쉬지도 않고 티라미수나 진저비어같은걸 만들며 이것저것 실험을 하더군요. 주7일 12시간을 일하는 와중에요.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충 어떤 맛이다 얘기하면 먹어본 적이 없어도 오리지날을 뛰어넘는 음식을 만들어 내질 않나.. 덕분에 참 많이 배웠습니다.
영상중에 온갖 요리가 있는 사진은 조리장 생일이라고 거하게 파티했던건데, 본인 생일상 본인이 차린다고 생각하니 뭔가 웃기더라구요. 아 저때 최신 트렌드 모음이자 단백질 보충제인 흑당마라고등어버블티를 했어야되는데.
좀 자세한 얘기를 하자면 안심은 한국에서 먹은 것 보다 여기서 먹은 게 더 많을 정도고 삼겹살은 1.4톤이나 들어온 덕에 주말엔 그냥 먹고 싶은 만큼 알아서 구워 먹으면 됩니다. 횟감용 생선들도 좋은 냉동실이 있어서 초밥이나 회덮밥을 종종 먹습니다. 뚝배기나 전골냄비를 이용해서 한국에서 외식하는 것처럼 해먹기도 하구요. 과자나 음료, 라면, 각종 통조림도 다 무료랍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먹으면 한달 식비만 150만원은 나갈 거예요 아마. 그래서 그런지 다이어트가 쉽지 않아요. 군대 이후로 하루 3끼를 꼬박 챙겨먹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근데 재밌게도 제가 제일 먹고싶었고 그리웠던 음식은 슈크림 붕어빵입니다. 12월에 친구들 인스타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쩝 근데 한국 오니까 이젠 파는데가 없네요.
그나마 부족한건 신선식품인데 이것도 아라온이 들어오고 한두 달 정도는 넉넉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멜론, 파인애플, 포도, 딸기, 사과 및 각종 야채들을 행복하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렌지나 귤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괜찮더라구요. 게다가 온실에서 자라는 상추로 매일 한끼 정도는 샐러드를 먹을 수 있습니다. 계란 같은건 몇개월이 지나면 곰팡이가 생긴다는데 매일 조금씩 상해가는 걸 먹기 때문에 몸이 적응해서 탈이 안난다는 월동대원의 조언?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기서 먹는 음식의 3분의 1정도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거긴해요. 멸균우유는 유통기한이 4개월정도 지나서 어떤건 물컹한게 가라앉있는데 단 한번도 배탈이 나지 않은걸 보면 인간의 위장은 은근 튼튼한가봅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더 자주 배가 아팠던.
마지막에 피자 사진은 이탈리아 기지 방문했을 때 먹은건데 믿을수 없게도 가지피자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판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