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
벼가 익어간다.
사람들은 벼에게 칭찬을 한다. 황금물결이라는 둥 굶주림을 해결해준다는 둥.
나는 벼냄새가 싫다.
특히 수확철의 벼벤 냄새가 싫다.
비온 뒤의 풀냄새는 무척 기분이 좋지만 벼를 벤 후의 냄새는 벼들의 피비린내다.
대학살의 현장이다.
벼는 확실히 안정적이고 좋은 식량이다. 가끔 똑같은 벼들을 보면서 꼭 우리같다.
어른들은 공무원이 확실히 안정적이 먹고 살기 좋다고 말한다. 노량진의 비린내나는 시장옆에 오래된 건물들이 들어선 고시촌에선 벼 냄새가 난다. 고시촌에 더욱 많은 유사 성행위 업소나 술집과 당구장들은 벼가 병들게 하지 않기 위해 뿌려지는 농약같고, 길에서 사는 싸구려 스팸컵밥은 화확비료같다.
내 주변에는 흔히 말하는 '세계여행사' 친구들이 꽤 있다.
이들은 SNS상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반면에 말도 안되는 악플에 시달린다.
오늘 마주친 논의 파란 꽃을 바라보다 '세계여행사'친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용기와 개성있는 삶을 적극 지지한다.
남들처럼 불쾌한 벼냄새를 풍기며 눈에 뛰지 않게 조용히 살다
가을에 베어질 벼가 되기보다
논에 가만히 핀 파란꽃이 되길 바란다.
장미꽃은 먹을 수 도 없거니와 금방 시든다.
잠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엔 큰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감동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치른다.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논에 피어난 고상한 파란 꽃을 솎아내고 가치없음을 섣불리 결정하지 말길.
며칠만 아름다울 꽃에게 대가를 지불할 낭만을 간직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