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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Apr 24. 2024

너 아닌 내 마음의 나이키

아직까지 아들을 키우면서 입히고 신기는 일이 참 수월하다.

어릴 때의 의복은 보온과 안전이 1순위요, 오래 휘뚜루마뚜루 입힐 수 있는 실용성이 2순위인지라 

바지 속에 내복 입히고 티셔츠 팔이나 바지 끝단을 두 번 접어 입혀도,

물려받은 옷의 최초 주인 이름을 매직으로 같이 지우며 깔깔거리면서도

불편하지만 않으면 잘 뛰고 구르며 좋아라 입었고,

지금은 등교 전 거실에 그날의 날씨와 수업 과목에 맞춰 옷을 빼 놓으면

그대로 양말부터 점퍼까지 재고의 여지 따윈 아예 없이 훌떡 입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는 게 제일이라 외치다가도

지난 가을부터 주구장창 신어대 뒤축이 단 아이의 운동화를 보자니,

그 뒤축 까진 더러워진 단벌 운동화를 한 밤이면 마르겠지 조마한 마음으로 늦은 저녁에 빨면서


네 마음의 나이키는 아닐지라도 내 마음의 나이키 같은 것이 슬금슬금 올라와

발볼 넓고 발등 높은 우리 아이에게 나이키는 잘 맞는 브랜드도 아닌데

괜시리 신발 한 켤레 안 사주는 매정한 엄마가 된 건 아닌지 자책 비슷한 마음이 드는, 

그래서 미안함이 몰려오는 그런 날.


적어도 운동화가 두 켤레는 있어야 번갈아 빨아 신을 수 있고

지난 가을과 겨울, 그리고 새해 봄에 걸쳐 아이 발도 자랐을거란 주장을 펴

쇼핑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와 남편을 끌고 큰 아울렛에 갔다.

아이 발 크기가 키즈와 어덜트 경계에 서 있어

키즈 매장에서나 어덜트 매장에서나 가볍고 발랄한 디자인의 신발을 찾기란 쉽지 않았지만

여러 매장을 돌고 돌아 결국 아이 신체 구조와 사뭇 맞지 않아 제외시키던 그 나이키-

아빠가 눈에 들어하고 아이도 괜찮다며 합의한 그 브랜드의 새 신을

기분 좋게 사들고 나왔다.


그런데 이런...

비 오는 날이라 안 되고, 놀이수업 있는 날이라 안 된다며 아이도 아껴 개시를 미루던 새 신을

드디어 맑은 날 신고 갔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하는 말이, 절대 그 신발은 안 신을 것이란다.

걸을 때마다 발등이 신발에 눌려 너무 아프다는 것.

꽉 묶은 끈을 조금 느슨히 다시 매 주며

새 신은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니 그래도 신어봐라 어르고 달래서

여지없이 신던 신발에 들어가던 아이 발목을 낚아 채 새 신 구멍에 넣어 신겨 보내고

덩그러이 신발장에 남아 있던 오랜 익숙한 신발을 본다.


아차,

발이 불편하면 초속으로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내가

이토록 내 눈치와 내 만족에 사로잡혀

통통 튀며 등하굣길을 내달리던 경쾌한 아이의 두 발을 옭아매었구나.


입에 맛난 거 들어가면 기쁘고

엄마랑 손 잡고 가는 길이 신나고

친구가 놀자 하면 행복한 아이에게

내 걱정과 내 측은에 보상해 놓고 아이를 위해서라 이름 붙였구나.


볕이 좋은 날,

어쩌면 두어 번 억지로 신는 동안 조금은 익숙해졌을까, 새 신을 신고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발볼 넉넉하고 편안하지만 뒤축이 닳은 그 신발을

깨끗하게 빨아 널었다.

뽀송하게 마르면 이거든 저거든 편한 거 신으라고

발이 편해야 발걸음이 가볍고 그래야 뭐든 할 기분이 난다고

새 신 옆에 티나지 않게, 아무렇지 않지만 단정하게 놓아 둘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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