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뷸런스 / Ambulance> (2022) 후기, 영화 읽기
다음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윌은 형 대니와 그의 삶으로부터 너무나 벗어나고 싶어 하나, 지독한 형제애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인물이다. 윌과 대니는 피부도 다르고 성격 또한 너무나도 다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복형제지만, 그들은 서로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윌과 대니는 기질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걸까. 둘은 모두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사이코패스 범죄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입양된 아들이었던 윌은 계속해서 범죄에 몸을 담는 삶이 잘못됐음을 느끼고 군에 입대한다. 반면 범죄자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은 친아들 대니는 개과천선한 동생 윌과 달리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며 부를 쌓아왔으며, 아예 범죄가 그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하다. 대니는 범죄의 삶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그리고 아내의 수술비를 위해 돈이 필요했던 윌에게 인생을 바꿔주겠다는 감언이설로 또다시 그를 범죄로 끌어들인다.
윌과 대니는 은행털이 중 그들이 총을 쏴 부상을 입힌 경찰관 잭과 그를 치료하던 구급대원 캠이 타고 있던 앰뷸런스를 탈취해 그들을 인질로 삼는다. 윌과 대니의 기질 차이는 이 앰뷸런스를 타고나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윌과 대니는 잭을 살리려고 사력을 다하지만, 그를 살리려는 이유는 서로 달랐다. 윌은 자신이 잭에게 부상을 입혔으니 조금이라도 그것을 만회하고자 그를 살리려 하지만, 대니의 목적은 오로지 본인과 동생 윌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잭이 죽어버리면, 끝없이 쫓아오는 동료 경찰들이 자신들을 살려두지 않을 거라는 걸 대니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니에게 잭과 캠은 목숨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
대니가 잭과 캠을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사실은 영화 중간중간 그의 대사와 행동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믿는지 모르겠어. 너도 그냥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야." 캠에게 총구를 겨누며 뱉는 대니의 대사. 이 위험하고 불안한 추격전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대니는 목숨에 위협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캠을 죽이겠다며 협박을 하고,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기도 한다. 결국 대니는 윌의 총을 맞고 죽는다. 윌은 대니에게 총을 쏨으로써 지독했던 형제애의 사슬을 스스로 끊어냈다.
물론 윌이 대니를 총으로 쏴서 캠을 구해줬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고, 절대 되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범죄자지만, 사랑하는 가족이었던 형 대니와의 지독했던 인연이 끝남으로써 윌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엉키고 엉켰던 사슬을 풀고 결국 윌과 대니에게 남은 것은 유년시절 속 둘만의 순수한 추억뿐이다.
캠은 골든타임을 절대 놓치지 않는 최고의 구급대원이다. 앰뷸런스에 환자를 태우고 이송할 땐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녀지만, 사실 환자들은 그녀에게 직업적 수단일 뿐이다. 캠의 파트너 스콧은 오전에 구해줬던 '린지'라는 아이의 상태를 궁금해할까 봐 캠에게 알려주지만, 캠은 관심 없다며 말한다. "이건 그냥 직업이야. 환자를 내려주고 나면 그냥 싹 잊으면 돼. 그들의 악몽이 우리에겐 그냥 일과일 뿐이라고." 처음부터 이랬던 건지, 계기가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시니컬하게 뱉는 캠의 대사는 '너도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말하는 대니와 왜인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자신과 잭을 본인의 안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던 대니처럼 환자들을 자신의 직업적 수단으로만 여겼던 캠은 윌의 사연을 듣고, 대니와 달리 단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잭을 살리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환자들을 그저 매일의 일과로만 생각했던 그녀의 마음속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인간적 면모가 다시 살아난다. 캠은 이제 환자들을 그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아무개가 아닌, 하나의 소중한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변하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을 인질로 잡았던 윌이지만,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 당일 아침 자신이 구해준 환자 '린지'의 병동을 찾아가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아준다.
'앰뷸런스'는 이복형제 윌과 대니의 서사로 시작해 구급대원 캠의 성장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윌의 이야기가 나오며 그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여주나, 사실 그는 캠을 진정한 주인공으로써 부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인간적인 따뜻함을 회복한 그녀는 린지의 말마따나, 그들의 손을 잡아줄 것이며 쉽게 놓지 않을 것이다. 병원을 나와 걸어가는 캠의 등 뒤로 경광등이 화려하게 울리며 영화는 끝난다.
2000년에 발매된 주석의 노래 '파괴의 미학'엔 이런 가사가 있다. '파괴를 두려워하지 마라. 왜냐하면 파괴는 또 다른 창조를 낳기 때문이다.'. 파괴지왕 마이클 베이는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앰뷸런스 속에도 다양한 폭발과 파괴를 담았다. 앰뷸런스가 담고 있는 폭발은 차량과 같은 물리적 요소의 폭발일 수도, 등장인물들의 아드레날린의 폭발일 수도, 관객들의 긴장감의 폭발일 수도 있다. 여기에 숨 쉴 틈 없는 카메라 워킹의 폭발까지.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폭발 이후, 마이클 베이는 무엇을 창조해 냈을까.
다들 마이클 베이의 전작 트랜스포머(2007)를 처음 봤을 당시의 느낌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 샘과 오토봇들은 올스파크와 메가트론을 파괴시킨 후, 새로운 평화를 가져왔고 오토봇들에겐 새 고향이 생겼다. 변신 로봇들 간의 긴장감 넘치고 화려한 액션이 여러 폭발들과 정신없이 지나간 다음, 린킨파크의 what i've done이 흘러나오고, 옵티머스 프라임의 독백과 함께 샘과 오토봇들이 만들어낸 평화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날 때. 이후 속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깔끔했던 이 영화의 엔딩이, 당시 어렸던 나에겐 굉장한 울림이었다.
이처럼 마이클 베이는 폭발과 파괴로 가득 찬 자신의 영화의 끝부분에선 항상 무언가를 창조해내 관객들에게 짧지만 인상적인 울림을 준다. 만약 영화의 속이 단순히 폭발과 파괴로만 가득 찼다면 마이클 베이는 '파괴지왕'이라는 현재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앰뷸런스 또한 엄청난 폭발과 파괴 이후,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 윌과 구급대원으로서 성장한 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소하게나마 관객들의 감동을 창조해낸다.
윌의 캐릭터성에 살짝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 감동이 내게는 통했으며 캠의 성장 서사가 마음에 들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뇌절을 거듭하며 미끄러지다 '앰뷸런스'로 재기에 어느정도 성공한 '파괴지왕'의 다음 영화를 극장에서 볼 날이 기다려진다.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