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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콕 중 통역사 Oct 21. 2021

포기해야 하는 욕구

06. 밤샘 작업 일지

학창 시절 나는 날라리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니었으며, 또 그렇다고 착실한 보통의 학생도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0교시가 시작되고 나서 정문을 통과하는 학생들에게 운동장의 쓰레기를 줍게 했는데, 나는 마치 학교에 환경미화원으로 취직이라도 한 듯 기꺼이 거의 매일을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조금 늦더라도 잠은 푹 자야 하고, 어차피 늦은 거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밥으로 배를 채운 후 학교로 발걸음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쓸데없는 여유로움은 시험기간에도 이어졌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고 시험 범위를 아직 다 보지 못했더라도, “졸려서 정신 못 차리는 상태로 시험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맑은 정신으로 찍는 게 점수가 더 잘 나올 거야"라는 생각이 항상 끼어들었고, 이 논리는 언제 들어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과학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매번 망설이지 않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시 보니 날라리나 모범생이나 보통의 학생 그룹이 아닌, 꼴통 그룹에 속했던 게 분명한 이런 나를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잠이 많은 것은 비단 등교나 시험을 앞두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혈기왕성한 대학생이 되어보니, OT 던 MT 던 특별할 것 없는 술자리던 밤새 노는 사람은 꼭 있는 듯했고, 노느라 다음날이 돼서 집에 돌아갔다는 무용담도 많았지만, 나에겐 그 아무리 즐거운 자리라도 잠보다 소중하진 않았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서 보니, 5일이나 회사에 몸 바쳐 억울한 직장인 대다수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고삐가 풀린 채 라이터, 토치, 성냥개비, 부싯돌 중 하나를 쥐고 불금 쇼를 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겐 금요일의 그 어느 약속보다 '다음 날 좀 더 늦게까지 잘 수 있다'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을 뛰게 했다.







당연하게도 평생 밤을 새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내가, 난생처음 이틀을 꼬박 못 자고 고문당한 날은 출산 후 집에 처음 왔을 때다. 요동치는 산후 호르몬은 갓 태어난 아기가 죽을 것 같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만들어내었고, 아기를 지킬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오직 나밖에 없다는 미신적인 신앙이 나를 잡아 삼켰다.


그렇게 뜬 눈으로 아기 곁을 지키는데, 아기가 용트림을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쭈굴쭈굴한 얼굴을 더욱더 구겨야 하는 것처럼 온 얼굴을 찌푸리며, 안색은 언젠가 맥주집에서 본 핑크색 네온사인과 가까운 밝기를 만들어 냈다.

만지면 부러질 것 같은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온몸을 뒤틀며, 개미 x구멍만 한 입에서는 할아버지가 낼 듯한 신음소리, 아니 불을 뿜는 용의 울림일 듯한 소리가 새벽의 적막을 깨는데, 아기의 모습과 행동이 서로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안 그래도 극도의 불안감에 쌓여있던 나에게는 귀신영화 한 장면을 무한 재생으로 보는 것 같았다.

    

초보 엄마를 위한 육아서적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신생아라는 존재는 모든 면에서 내 상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쩌면 근거 없는 내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당시 난 아기에게 붙어있던 탯줄조차 무서웠다.

나와 연결되어 있던 강렬한 흔적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까딱하다가 실수로 마르지 않은 탯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난 기저귀 하나를 가는 것도 손을 덜덜 떨지 않고서는 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울고 나서는 월요일 아침이 되어,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셨다.

땡땡 부은 내 눈은, 처음 이모님을 만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 실수로 잠그지 않아 물이 졸졸 흐르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쉬지 않고 흘려보냈다. 몸의 모든 수분이 눈을 통해 흘러나갔는지 아기를 낳은 산모인데도 젖 한 방울 짜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밥을 차려주실 생각으로 이모님은 나에게 프라이팬은 어디 있는지 조리도구는 어디 있는지 물으셨는데, “저기 수납장 아래요”, “저기 윗 선반에요”라고 친절한 톤으로 대답을 하는 내 뺨에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타고 내렸다. 마치 뇌 한 곳이 고장 나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깜짝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시던 이모님은, 그 후 모든 포커스를 나에게 맞춰주셨다. 그렇다고 나의 수면욕을 채워주신 것은 아니었다.

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산모의 책임과 의무를 지키는 것보다 자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는데, 이모님은 나의 세 끼를 챙겨주시면서 돌아서면 울어대는 신생아에게 젖을 물리도록 ‘강요’하셨다.


그때의 내 상태는 딱 그랬던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는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데, 젖 물리는 일이 강요받는 것같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고장 난 뇌의 그 어느 부분이 저절로 고쳐질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숙면만을 취하고 싶었다.


그래도 결국, 나는 세상 모든 존경스러운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욕구를 이겨내며 한 생명을 키워냈다. 아니 다른 무엇보다 꼴통 그룹에 속해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것에 매우 취약했던 내가, 이번에야말로 착실한 보통의 그룹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껏 밤을 새워 백점 맞은 시험이나, 노느라 다음 날 집에 기어들어간 무용담은 없었지만, 현재 나에겐 그 무엇보다 값진 ‘밤샘’의 결과가 옆에서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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