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몸매의 대명사인데, 시대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인지 요즘 젊은이인(?) 나는 비너스가 그려진 그림을 아무리 찬찬히 살펴보아도 마음에 큰 동요가 없었다.
닿으면 미끄러질듯한 우유 빛깔의 피부를 빼고는, 전체적인 몸의 형태나 비율은 동네 대중목욕탕에 가면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몸이 아닌가.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귀찮게 목욕탕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내가 평생 가질 수 없는 잘록한 개미허리라기보다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두툼한 허리라인에,
단단한 근육 배라기보다는 오히려 잘 보면 귀여운 뱃살이 보일 듯 말듯한 게, 내가 훕! 하고 힘주고 서 있으면 나타나는 S라인과 비등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비너스의 가슴은 분명 내 가슴 컵보다 작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비너스보다는 오히려 포토샵으로 보정을 거친 듯한 잡지의 이름 모를 모델들의 몸매를 동경했다.
막달이 되었을 때 나는 임신 전과 비교하여 몸무게가 18kg나 더 증가했는데, 일반적으로 적정하게 여겨지는 임산부의 체중 증가가 약 12kg기 때문에 정말 많이 찐 것이었다.
원래도 잘 먹는 편이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마음껏 먹을까 싶어 단식원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흡입한 결과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기를 낳고 겪은 산후 우울증 때문에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되어 18kg가 모두 빠져 임신 전과 같은 몸무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다시 비너스에 기죽을 일 없는, 그런 몸매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체중계에 나타난 몸무게는 소수점 이하까지 유사했는데, 내 몸은 전혀 유사하지 않았다. 거울로 비치는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일단 임신 전에 입었던 옷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아기를 낳은 사람 = 아줌마>라는 공식을 피해 갈 수 없었는지, 임신 전 입고 다니던 옷을 입은 내 모습은 마치 아줌마가 처녀의 옷을 질투해 빼앗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살랑거리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서보니, 거울은 왠지 모르게 듬직해 보이는 낯선 내 모습을 비춰 주었다.
그때까지 나는 임신을 하면 배만 볼록해져 아기가 크다가, 아기를 낳으면 배가 쏙 들어가고, 그 와중에 여기저기 찐 살은 열심히 다이어트로 빼면 된다고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것보다 훨씬 많이 바뀌어 있었다.
출산으로 골반 뼈만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내 등뼈를 포함한 다른 모든 뼈들도 함께 벌어진 듯했다.
모유 수유를 할 때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탈듯한 갈증은 목구멍이 아니라 온 피부에도 전해졌는데, 그래서인지 피부가 서걱서걱했다.
또한 막달까지 열심히 잘 관리해서 분명 튼살만큼은 없었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숨어있던 튼살이 자취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존재감은 뽐내지 못했는데, 탄력을 잃고 쭈굴거리는 뱃살에 밀려서이다.
잃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가슴 사이즈였는데, 딱 사이즈에만 국한된 이야기고 모양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기를 얻은 대가이기는 하나, 나는 엄마이면서 여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비너스의 그림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너스도 알고 보니 아기를 10명 이상 낳은 아줌마였지만, 필시 처녀 때 모습으로 그려진 그녀의 모습은 돌아갈 수 없는 나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비너스가 살아있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리라고 했겠지만, 어쨌든 친숙했던 비너스는 그렇게 나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