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
08. 생김새 관찰 일지
데이트를 하다가 굶주린 배를 쥐고 햄버거 가게로 들어간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의 작은 특징까지 모두 파악한, 오래된 연인으로 불리는 때였다.
남편을 너무나 잘 알아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춰보면,
남편은 깜짝 놀라며 "넌 날 너무 잘 아니, 이만 죽어줘야겠다"라며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런 내가 그날 남편의 새로운 특징을 또 하나 발견했는데
한참 햄버거를 먹다가 남편을 살펴보니
햄버거를 쥐고 와아~하고 입을 벌리는 순간, 눈이 약속이라도 한 듯 꼭 감기는 것이었다.
마치 방문 앞 스위치 같아서, 톡 누르면 탁 반응이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까르르 웃으며
"오빠, 서울에서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 햄버거가 입에 들어올 때도 눈은 크게 뜨고 있어야지!" 하며 놀려댔다.
모든 연인들이 아마도 그렇겠지만, 나와 남편도 역시나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놀리는 포인트들이 정해져 있었다.
가령 남편은 내 눈썹을 보고 놀려대는데, 눈썹이 서로에게 원수라도 진 듯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이다. 그리고 또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축 늘어진 강아지 꼬리 모양을 하고 있어, 난 어느 모임에 나가든 불쌍해 보여서 챙겨주고도 싶고 졸려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한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난 남편의 오리궁둥이를 놀려댔다. 사실 지나치게 두꺼운 콩깍지가 씌어있어 깨물어주고 싶은(?) 엉덩이지만, 오래된 연인은 좀 더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짬밥이 되어 그런 식으로 애정을 표현하였다.
나의 또 다른 놀림거리는 이번에도 별로 사이가 좋지 못해 보이는 발가락이었다. 일명 개구리 발가락.
무좀에 잘 걸리지 않을 (실제 난 한 번도 무좀에 걸린 적이 없다) 장점이 뚜렷한 발가락이지만, 남편은 못생겼다며 핀잔을 주었다. 물론 그 말을 하는 남편의 눈은 하트 모양이라 놀림이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또한 남편은 내 앞니를 경외하기도 했는데, 토끼의 것처럼 커서 씩 웃으면 상대방에게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당근을 가져와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주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귀여워 죽겠는 상대방의 특징들, 그래도 결국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그 특징들을 잡아 놀려대기 바빴다.
우리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딸아이는 “첫 딸은 아빠를 닮는다”라는 흔한 말에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하고 태어났다.
동그란 두상과 작은 얼굴, 그리고 눈, 코, 입이 남편을 빼닮아 “씨는 못 속인다”라는 예로부터 전해온 속담을 정확히 이해시켜주었다.
거기에 더해 뱃속에서 우리가 입버릇처럼 놀려대던 특징들을 귀담아듣곤 그 유전자를 모두 쇼핑카트에 담아 온 양, 우리 딸아이는 사이가 멀면서 축 늘어진 강아지 꼬리, 오리궁둥이, 개구리 발가락을 가지고 태어났다.
지금 꽤 자란 우리 딸아이의 젖니가 빠지자 당연하다는 듯 토끼 앞니가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고, 햄버거를 좋아하는 꼬맹이는 아빠와 마찬가지로 압을 크게 벌릴 때마다 코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딸아이의 생김새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말이 씨가 된다” 등의 많은 속담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본보기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의 생김새는 부모를 더 강렬하게 당기는 무기가 되는 것 같다.
아이의 모습 그냥 그대로 내 눈에 와서 박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남편의 특징들, 예전부터 남편과 공유된 추억들, 햄버거 집에서 웃고 떠들던 우리의 옛 모습까지 함께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