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사라지고 마음만 남았다.

할아버지를 보내며….

by 스텔라윤


이번 주에는 연재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친가보다 외가에 정이 깊어 나에게는 유일한 할아버지였다. 지난주에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우리 할아버지 참 멋있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이야….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 (2018)


지난번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찾아뵈었을 때


“할아버지 또 올게요.”했더니

“백 번 더 와.”라고 하셨는데….


그 후로 한 번밖에 더 못 뵈었다.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표현도 거의 없었다. 이유 모를 은근한 다정함이 느껴졌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으셨기에 겉보기엔 늘 무뚝뚝했다. 엄마는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후에도 할아버지를 어려워했다.


하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할아버지를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께서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야 할아버지의 다정한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크게 반기진 않아도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시던 표정. 안마의자에 누워 가족들이 함께 모여있는 거실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며 흐뭇해하시던 얼굴. "한 밤 더 자고 가지 뭘 벌써 가냐."라고 말씀하시던 모습…. 그 모든 게 할아버지의 사랑 표현이었다.


할아버지가 쇠약해지시면서 깊이 숨겨두었던 마음은 오히려 짙어지고, 겉으로도 조금씩 티가 났다. 부축해 드리느라 팔짱을 끼면 내심 좋아하시는 게 느껴졌다. 혈액순환이 잘 되라고 손을 주무르고 무릎을 쓸어드리면 나의 손길을 달가워하셨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면 마다하지 않고 카메라를 바라보셨다. 함께 찍은 셀카 속의 할아버지는 언제나 은은하게 웃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 또 올게요.”라는 나의 말에 “백 번 더 와라.” 말씀하셨던 건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내가 먼저 더 친근하게 다가갈걸…. 늘 적당한 거리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얼마나 말을 걸고 싶고 손을 잡고 싶으셨을까? 아쉽지만 되돌릴 길이 없다.


존재는 사라지고 마음만 선명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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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식 날 입으셨던 양복은 관에 함께 넣어드렸다. 아끼시던 옷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모습까지 멋있었다. 피부도 깨끗하고 표정도 단정했다. 차디찬 할아버지 얼굴과 팔다리를 쓰다듬는데 할아버지께서 나의 손길을 다 느끼고 계실 것 같았다. 드릴 게 없어 나의 온기라도 나눠드리고 싶었다.


내가 할아버지의 진심을 뒤늦게 알아차렸듯이 할아버지도 나의 뒤늦은 사랑을 느끼셨겠지….


할아버지를 쓰다듬으며 아끼시던 옷 입고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사랑하는 가족들을 멀리서 바라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시기를, 따뜻한 온기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할아버지와 나. (1990년)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는 다정했지만 할머니에게는 참 어려운 남편이었다. 아내에게는 무뚝뚝을 넘어 괴팍하기도 했던 남편이었다.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는 평생을 맘 졸이며 사셨다. 할머니의 가슴에는 답답한 한이 쌓이고 심장은 쪼그라들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안 그래도 키가 작은 할머니는 훤칠한 할아버지 옆에 있으면 더 작아 보였다. 마음도 목소리도 키도 점점 더 쪼그라들기만 했다.


그런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한편으로는 시원할 법도 한데, 할머니는 오직 섭섭함뿐인 듯했다. 할머니는 아이처럼 엉엉 울며 말했다.


비둘기 마냥 둘이 평생 살았는데
혼자 어떻게 살어….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목놓아 우는 할머니를 보며 부부라는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나를 온전히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엄마도 아빠도 형제들도 친구들도 나를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말과 행동이 아닌 마음 깊숙한 곳의 나의 진심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은 남편 한 사람뿐이다. 누군가 내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이가 필요하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남편을 떠올릴 것이다.


할머니도 나와 마찬가지 아닐까? 나와 남편은 이제 겨우 6년인데,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70년 가까이 살았다. 살갑고 사랑을 듬뿍 주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고되고 때로는 기쁜 삶의 모든 순간을 나눈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부부의 연으로 만나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 사람. 평생 함께 하며 켜켜이 쌓인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오직 서로만이 서로에게 그 유일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단 한 사람이 사라진 허망함이 얼마나 클지 헤아릴 길이 없다. 엉엉 우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보다 어렸을 시절.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한 사람이 생을 정리하고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눈에 담았다. 차갑고 부드러운 얼굴, 온도차로 송골송골 물기가 맺혀있는 피부, 살아생전과 다름없는 다부진 표정, 화장터에서 마주한 뼛조각까지…. 공원묘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손에 남은 건 할아버지의 사진액자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누워있던 소파,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화분과 물건들, 할아버지가 입으셨던 옷가지들, 드라이기, 슬리퍼…. 이제 곧 사라질 의미 없는 물건들….


뒤늦게야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셨고 키가 훤칠하고 인물도 좋고 멋쟁이였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종종 옷 선물을 하곤 했는데 옷걸이가 좋으니 어떤 옷이든 척척 잘 소화해 내셨다. 내가 사드린 옷은 닳을 때까지 자주 꺼내 입으셨다. 할아버지께 가는 날은 늘 내가 사드린 옷을 입고 계시곤 했다. 손녀가 사준 거라며….


할아버지는 화분을 참 좋아하고 잘 키워내셨다. 지금도 할아버지 베란다에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화분뿐만 아니라 돌도 좋아하셔서 할아버지 댁에는 온갖 모양의 돌들이 진열장에 가득했다. 40년 이상을 매일, 화분 하나하나 돌 하나하나 닦아내고 보살피셨다. 회와 갈비를 좋아하셨고…. 또 뭐가 있을까.


할아버지의 베란다. (2024년)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나눈 추억은 꽤 많지만 ‘정인희’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젊어서는 무얼 꿈꾸었는지…. 가족들은 알까. 할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은 알까.


할아버지는 말없이 가셨다. 돌과 화분은 한가득 남기셨지만, 어떤 말도 어떤 글도 남기지 않으셨다. 할머니도 그게 제일 서운하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아무 말도 없이 갔다고….


삶을 계속 기록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내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의 기록, 그 자체가 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 삶의 기록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지난 일요일은 에세이 원고를 최종으로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오후 4~5시쯤 되었을까, 에세이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눈물범벅인 얼굴로 원고를 제출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할아버지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나 에세이 쓰는 거 방해 안 하시려고 시간 맞춰 가셨나 싶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 남편은 몇 달 만에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 남편이 말끔한 모습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나 싶어 참 감사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회사를 다닐 때도 대견해하셨지만, 내가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참 좋아하셨다. 연신 "잘했다. 잘했다." 하셨다. 평생을 교직에 계셨기에 자신을 닮은 손녀를 보는 게 뿌듯하셨던 걸까. 이제 보니 할아버지는 늘 셔츠나 양복 주머니에 펜 하나를 끼워 넣고 다니셨다. 할아버지는 펜으로 무얼 기록하셨을까.


내가 쓴 책이 나오면 할아버지가 참 기뻐하실 것 같다. 할아버지 손에 책을 쥐어드리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지만, 할아버지께도 꼭 한 권 선물해 드려야지.



할아버지께서 평안하기를, 자유롭기를….


2024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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