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뭐 입지? 내 멋대로 입을 자유
발리 우붓의 폭포 앞에 붙어 있던 경고장. 아무리 자유로운 발리라 해도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야 한다. 발리 사람들도 여행자들이 아무 데서나 웃통을 훌렁훌렁 벗거나, 나체로 수영하는 걸 반기지 않는다.
"발리 뭐가 좋아?"
"아무렇게나 입어도 돼서 좋아. 옷의 제약에서 해방된 느낌이랄까.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된 느낌이기도 하고."
6년 전, 한 달 동안 발리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데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꼈다. 한국의 분위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짓눌렀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스스로의 검열과 타인의 시선, 사회적인 눈초리를 견디며 살고 있다. 물론 자유로운 옷차림은 발리뿐만 아니라 한국을 벗어나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발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더 짙은 자유로움이 있다.
한국에서는 겨털 때문에 나시를 못 입는 남편도 발리에서는 노 프라블럼! 4,000~6,000원짜리 발리 나시 몇 장이면 발리 한 달 살이도 거뜬하다. 나 또한 만다라 문양이 그려진 나시티 몇 장이면 노 프라블럼!
발리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옷을 일상적으로 입는다. 갖춰 입는다는 느낌보다는 편안하게 즐겨 입는 느낌이랄까. 아래위 모두 전통옷을 입기도 하지만 위에는 티셔츠를 입고 밑에는 '사롱‘이라 불리는 랩스커트처럼 생긴 천을 두르기도 한다. 신발은 대체적으로 '쪼리'로 통일하는 편.
그렇다고 발리 사람들이 미적 감각이 없고 꾸미기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SNS에 놀러 가보면 평소와 다르게 화려하게 꾸민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그들은 한없이 소탈한 모습이다.
덕분에 우리도 덩달아 옷을 신경 쓰는 일에서 자유로워진다. 물론 모든 여행자가 우리 같진 않다. 섹시하게 차려입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평소 한국에서도 편안한 복장을 추구하는 편인 나와 남편은 발리에서는 편안하다 못해 때로는 약간 허접하게(?) 옷을 입곤 한다. 그러고도 떳떳하다. 우리가 뭘 입든 (뭔가 입기만 입었다면)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발리 사람들은 쨍쨍 찌는 한여름 날씨에도 긴팔 긴바지를 즐겨 입는다. 이동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애용하기 때문에 강한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바람막이 용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긴팔 입는 발리 사람들을 보고 "어우~ 안 덥나?" 싶겠지만 메인 이동수단을 오토바이로 할 예정이라면, 바람막이는 필수다. 아침저녁으로 꽤나 쌀쌀하다. 또 발리의 햇볕이 겉보기엔 한국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발리 태양을 우습게 봤다가는 팔이 분홍소시지처럼 익어버릴지도 모른다.
*남편 피부가 약한 탓도 있다. 나도 나시 입고 같이 오토바이를 탔지만 나는 그냥 새카맣게 탔다.
그 길로 발리 현지 사람들이 애용한다는 마켓에 가서 긴팔 셔츠를 샀다. 그 셔츠가 꽤나 멋있어 보였는지 오토바이 타고 길 위에서 만난 발리 사람들이 남편의 셔츠에 눈독 들이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마치 '저 멋쟁이 셔츠는 뭐지? 나도 한 장 사고 싶은 걸?' 하는 느낌이랄까.(우리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긴 팔 셔츠에 장갑까지 끼고 나면 드디어 진정으로 발리에 녹아드는 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목장갑 낀 손으로 남편이 엄지 척을 해 보이면 남편의 멋쟁이 셔츠에서 눈을 못 떼던 사람들도 덩달아 웃음을 보이곤 했다.
결론은 발리에서는 기본만 지킨다면 무엇을 입든 노 프라블럼!이다. (나체 NO! 특히 사원에서는 사원의 규칙대로!)
사회적 체면 차릴 일도 없고, 누군가를 의식해서 꾸밀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눈에 예쁘고 내 마음에 들고 내 몸에 편하면 그만이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왜 한국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한 걸까.
그래서일까. 발리 사람들은 꾸미지 않아도 눈빛과 미소에서 빛이 난다. 발리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각양각색이면서도 자연스럽다. 발리에서는 겉치레는 사라지고 본질만 남는다. 남들의 시선은 사라지고 내가 남는다.
+)
발리에 인생샷 찍을 장소가 많기 때문에 멋진 옷을 챙겨가는 것도 좋다. 평소에 입고 싶지만 괜히 눈치가 보여 못 입었던 옷이 있다면 발리에서 시도해 보시길!
와이낫? 노 프라블럼!
우리처럼 현지에 녹아드는 여행을 추구한다면, 굳이 옷을 많이 챙겨갈 것 없이 발리 시장에서 몇 벌 사 입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바리바리 옷을 챙겨갔지만, 네 번째 여행 때는 옷을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텅텅 빈 캐리어에 발리 친구들에게 줄 한국 과자를 잔뜩 담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티셔츠는 그냥 똑같은 면 티셔츠 일뿐인데도 발리에서 입으면 마치 얼굴만 하얗게 선크림 바른 듯 동동 떠있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발리에서도 1만 원 ~ 2만 원이면 자연스럽고 예쁜 티셔츠를 살 수 있다.
발리에서 며칠 지내보면 느끼겠지만 어차피 더운 날씨 탓에 하루 종일 땀 뻘뻘 흘리고 매연을 온몸에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화장과 거추장스러운 옷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또한 여행 스타일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발리도 여행자의 취향에 따라 여유로운 휴양지가 될 수도 있고 액티브한 여행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