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뇌전증에 관해 글을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는 처음 진단 받았을 때의 내 상황부터 지금까지의 내 여정을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특히 지금은 내가 지나온 그 터널을 지금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 시기도 지나가긴 지나가더라구요. 그러니 지금처럼 한걸음 한걸음 계속 걸어보세요. 이미 잘 하고 계세요.
두 번째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뇌전증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보 자체가 많지도 않았고, 그렇게 알려진 정보도 그리 정확하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고백하자면 이 두 번째 이유는 좀 난감한 일이었다. 사실 나 스스로도 뇌전증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난 10년이 되는 시간동안 뇌전증에 대해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뇌전증을 뇌전증이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이름을 소리내서 읽지도 못하는데 그걸 어떻게 검색창에 입력해서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겠는가. 그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뇌전증에 관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QnA'에 쓸 정보들을 정리하기 위해 뇌전증을 얻은지 10년만에 처음으로 검색창에 '뇌전증'을 검색했다. 무언가 대단하게 새로운 정보를 알게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검색 히스토리에 '뇌전증'이 생겼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사실이었다.
처음 이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설렘에 이 책의 결말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게 무엇이던 '현재의 나'로 마무리 지으리라 생각했다.
글을 쓰는 모든 과정이 설렜다. 물론 내 브런치북 주제 특성상 행복했던 기억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놨던, 혼자만 알고 있던 기억과 감정에 대해 쓰는 것이기에 그 당시의 나와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할 뿐인데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책이 점점 더 완성될수록 손가락이 무거워졌다. "종이 울렸다. 그리고 축제는 끝났다."를 쓸 무렵엔 손가락들이 게으름뱅이들마냥 키보드 위에서 도통 움직이질 않았다. 가슴은 체한 것처럼 하루종일 답답했다. 그 다음 날 홀로 새벽 등산을 하며 알 수 있었다. 복용량을 다시 원래대로 모두 원상복귀하고도 작년 11월에 발작을 한 뒤로 마음 속 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는 걸.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물 위로 끊임 없이 물음표를 던져 마침표를 건져 올리는 사람이다.
나는 또 생각했다.
그럼 그런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의외로 등산을 마치기 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내게 답하기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나보다. 단지 이 질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어려웠을뿐. 나는 앞으로 가야했다. 마침표가 무엇이든간에 그것을 건져 올릴 때까지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져야만 했다.
지금도 처음 내가 생각했던 브런치북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적은 이 결말이 그것과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의 이 모든 과정에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과정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이승에라도 있기에 개똥밭에 구를 수 있지 않은가.
브런치북에 글을 연재하고, 모르는 이들이 보내는 응원과 공감의 힘을 받는 건 참 가슴 떨리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내게는 더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SNS를 하지 않는 내가 왜 SNS 관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 처음 글을 쓸 때만해도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힘을 받으며 글을 마무리하게 됐다.
내게 너무 소중했던 이 작은 공간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모두의 삶에 작지만 반짝거리는 것들이 넘쳐나길 진심으로 바란다.